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차기 대권구도에 갑자기 부상한 배경을 두고 뒷말이 많다. 그중엔 여당의 특정계파에서 특정 대권주자를 견제하기 위한 카드라는 이야기도 파다하다. 일부 친박계 의원은 29일 2017년 차기 대선 판세와 반 총장의 대권 도전 가능성 등을 분석하는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당청갈등설이 나도는 상황에서 뜬금없는 대선 세미나에 반 총장 거론이라니 그 의도가 의심을 살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차기 대선이 가까울수록 유력한 인물에 여론의 관심이 커지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정치적 의도가 깔렸든, 의도한 바가 없든 반 총장이 지금 대선판에 거론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반 총장은 한국인으로는 최초이자 아시아인으로서는 두 번째 사무총장이다. 세계 대통령으로 불리는 국제기구 수장에 한국인이 배출된 것으로도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다. 대통령은 5년마다 뽑지만 유엔 사무총장의 한국인 당선은 한 세기에나 있을 법한 일이다. 그가 세계평화에 이바지할수록 우리나라의 위상도 함께 드높아질 것이다.

세계 각국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는 국제기구 수장은 공평과 정의가 생명이다. 자신의 정치적 진로와 관련해 이해관계가 없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 그를 혼탁한 정치판에 끌어들이는 것은 자칫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우가 될 수 있다. 누구든 퇴임 이후 본인의 정치 행보를 염두에 둔다면 현재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신뢰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치권이 지금 걱정해야 할 것은 차기 대권주자가 아니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세월호 문제와 공무원연금 개혁 등으로 첨예한 사회 갈등을 치유하고, 이와 맞물린 정치적 난맥상을 해소하는 것이다. 정부와 여야의 기민한 대응으로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 중 하나다. 민생은 뒷전이고 정쟁을 일삼으면서도 차기 대권을 걱정하는 정치권을 국민이 어떻게 보겠는가. 반 총장은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어야 한다. 장대 위에 올려놓고 흔들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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