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최근 어느 여행사가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가을 단풍을 구경할 때 가장 이색적으로 느낀 것이 무엇인지 설문 조사했다. 1위가 ‘셀카봉 열풍’이었다.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모습을 촬영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셀카봉’이 외국인들 눈에도 신기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셀카봉에 반한 외국 관광객들이 선물용으로 몇 개씩이나 사들고 돌아간다고 한다.

셀카봉이 IT 강국 대한민국의 위상을 보여주는 신기한 물건이라고 추켜세우기는 민망하지만, 날로 진화하는 아이디어 상품이 또 하나 등장한 것은 틀림없다. TV 방송에서 소개된 다음 폭발적인 인기를 끈 덕분에 야외나 관광지, 공원, 콘서트장 등 사람들이 붐비는 곳은 어딜 가나 셀카봉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셀카봉 열풍 탓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도 목격 된다. 극장에서 스크린을 배경으로 셀카봉으로 사진을 찍는 바람에 다른 사람의 시선을 가리기도 하고, 콘서트장에서는 감상을 방해하기도 한다. 복잡한 대로에서 셀카봉 삼매경에 빠진 사람 때문에 길이 막히고 혼잡해지기도 한다. 남들이야 불편하든 말든, “내 사진 내가 찍는데 무슨 상관이람?”이란 태도다. 다른 사람에게 신세지지 않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해주는 ‘셀프’가 이기심을 부추겨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역설적인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가 ‘셀프’라는 말에 익숙하게 된 것은 20여 년 전에 일본에서 들어온 ‘셀프 서비스’라는 단어 때문이다. 셀프 서비스는 일본의 대중 라면 식당에서 손님들에게 일일이 물을 날라 주는 등의 서비스를 해 주지 못하는 대신, 손님이 스스로 ‘셀프 서비스’로 해결하게 해 주고 그만큼 가격을 낮춰 주는 데서 시작된 말이다. 그런데 이게 우리나라에 건너와서는 제 값을 다 받으면서도 주인이나 종업원이 해야 할 서비스를 손님에게 떠넘기는 잔꾀가 되고 말았다.

아무튼 세상은 점점 더 ‘셀프’의 시대로 진행되고 있다. 혼자서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운동을 하고, 잠을 자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짝을 구하지 못해 할 수 없이 혼자 놀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자발적으로 혼자 행동하고 지내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많다. 식당에서도 혼자 밥 먹으러 오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별도로 마련하는 식당이 있는가 하면, 전화 한 통이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달려오는 배달 음식점 등 ‘셀프 라이프’가 가능하도록 하는 사회 분위기가 ‘셀프족’의 수를 늘리고 있다.

셀프의 시대가 남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모래알처럼 따로 노는 고독한 개인들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점에서 쓸쓸한 감도 없지 않다. “사진 좀 찍어 주실래요?”라며 어렵게 부탁을 하면, 카메라 앵글 속으로 들어오는 미소 띤 얼굴에 덩달아 내 입꼬리가 올라가는 모습이 훨씬 정겹고 인간답지 않은가. 사진을 찍어 주고 주소를 물어 우편으로 부쳐주다 사랑을 싹 틔우던, 그런 시절도 있었다.

‘셀프’의 시대라지만, 더불어 사는 인정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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