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만석군(萬石君)(4)

만석군의 아들 석건은 언행을 삼가하고 매사에 몸가짐을 조심하는 데는 그 아버지 이상의 인물이었다. 만석군이 죽자 석건은 너무나 슬퍼한 나머지 통곡을 하다가 1년 만에 아버지를 따라 죽고 말았다.

만석군의 막내아들 석경은 태복을 지내면서 아들 중에 말이나 행동이 제일 시원시원했는데 그도 항상 언행과 몸가짐을 조심하는 데는 누구 못하지 않았다. 그는 무제가 신임하는 신하 중에 하나였는데 나중에 승상 자리까지 올랐다.

그는 늙어서도 여전히 승상의 자리에 있었는데 온 나라 안에 흉년이 들어 떠돌아다니는 백성의 수가 수백만 명에 달하였다.

원봉 4년(기원전 107) 마침내 관동 땅에만 떠돌아다니는 백성들이 200만 명에 달했다. 중신들은 그 대책을 고심한 끝에 그 백성들을 변경에 강제 이주시킬 방책을 올렸다.

이 대담한 상소를 읽은 무제가 생각해보니 승상 석경은 늙어서 근직하기만 했지 이번 일을 의논할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을 했다.

그래서 승상에게는 휴가를 주어 잠시 고향에 돌아가게 한 다음 어사대부 이상의 중신들과 그 방법을 검토했다.

고향에 내려가려고 한 석경은 승상의 직책을 다하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 황제에게 상소를 올렸다.
“소신 석경은 분에 넘치는 승상의 자리에 있으면서 늙은 몸으로 폐하를 제대로 보필하지 못하여 국고는 텅 비고 백성들은 떠돌아다니는 형편입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그런 소신에게 관용을 베풀어 법을 적용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번에 소신은 승상과 후의 인수를 바치고 고향으로 물러가렵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부디 어진 인재를 등용하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무제는 석경의 사임을 인정하지 않고 꾸짖었다.

“국고는 바닥이 나고 백성들은 궁핍하여 떠돌게 된 현상을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그 책임을 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들을 이주시킨다고 하여 민심을 한층 더 동요시켜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와 같은 위기를 초래하고도 사임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도대체 이 책임을 누구에게 지우려 하는가?”

석경은 매우 부끄럽게 생각하고 다시 나랏일을 보게 되었다.

석경은 법령에 충실하고 부지런하였지만 나랏일에 관한 웅대한 구상이라고는 없었다. 그는 다시 조정으로 복귀한 지 3년이 지난 뒤에 태초 2년(기원전 103)에 죽었다. 그에게 염후라는 시호가 내렸다.

생전에 석경은 둘째아들 덕을 몹시 사랑했는데 무제는 그에게 목구후를 이어받게 했다. 나중에 덕은 태상에 임용됐지만 법을 위반하는 죄를 지어 사형 판결을 받자 속죄금을 물고 서민이 되었다.

석경이 승상으로 있을 때 그의 아들이나 손자로 2천석의 대관에 오른 자가 잇달아 13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석경이 죽고 나서는 차례차례로 죄를 짓고 벼슬을 떠나 그 일족의 훌륭했던 가풍도 쇠약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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