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콘크리트 지지도’라는 게 있다. 국정지지도나 정당지지 여론조사에서 특정 지역이나 계층에서 나오는 결과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기도 한데, 집지을 때 땅에 부은 기초 철근 콘크리트처럼 지축(地軸)을 뒤바꿀 큰 천재지변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부술 수 없이 견고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것은 대구·경북권을 주축으로 한 영남권과 연령층으로는 노인세대, 그리고 보수층으로부터 변함없는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를 대변하는 말이기도 했다.

특정 세력의 ‘묻지마’ 성향으로 45% 정도는 기본으로 따고 들어갔던 박 대통령에 대한 철근 콘크리트 지지율이 부서졌다. 천재지변으로 지축이 허물어지지 않고서는 상상할 수 없던 콘크리트 지지도가 지난 11일 여론전문기관의 조사결과 긍정평가는 43%였고, 부정평가는 48%로 나타났다. 그 원인은 세월호 참사와 사고 이후 연이은 국무총리 후보자의 낙마, 그리고 사의를 표명했던 정홍원 총리를 유임시키는 등 계속된 인사 실패 등으로 분석되고 있다.

언론과 국민 여론은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과 청와대 인사위원회의 검증시스템과 잘못된 운영을 지적하고 있다. 이에 청와대는 인사 실패를 방지하기 위해서 청와대 비서실에 인사수석실을 새로 설치하는 개선 방안을 마련했다. 인사수석실에 인사비서관과 인사혁신비서관을 두고 인사수석에게 청와대 인사위원회 간사를 맡긴다는 계획인 바, 그동안 인사 검증의 와중에서 말썽 많았던 청와대 인사위원장인 비서실장에게서 화살을 쏠리지 않게 한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지금까지 인사 실패가 대통령 비서실장 아래 인사수석이라는 직책이 없어 발생된 일이 아니다. 적어도 대통령의 인사 취향 내지 패턴, 베일에 싸인 추천의 주체, 지나친 보안과 안이한 검증 태도 등에서 축이 무너져 대형 인사사고를 일으켰던 것이고, 또 하나는 정부부처의 인사권을 장악하려는 자세에서 불거진 일이다. 새로 신설되는 인사수석 아래의 인사혁신비서관은 행정부 전체의 인사개혁 기능까지 수행토록 할 모양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우려가 크다.

대통령의 인사권은 범위가 넓고 국가·사회에 다대한 영향력을 미친다. 헌법에 의한 임명직 공직자에 대한 공적 처리는 당연하고, 법률에 의해서도 정부 부처의 공직자나 공공기관의 임원 등의 임명은 대통령의 몫이다. 국가공무원법에 의하면, 행정기관 소속 5급 이상 공무원 및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일반직공무원은 소속 장관의 제청으로 안전행정부 장관과 협의를 거친 후에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임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장관은 국무회의 구성원이고, 국정 집행 책임을 맡고 있지만 조직 내 인사 장악력은 매우 떨어진다. 공무원임용령에서 규정된 소속 3∼5급 공무원 임용권을 법령에서 위임받아 대통령의 임용권 일부를 행사할 뿐이다. 다시 말하면 부처의 국장급에 해당하는 고위공무원단 나급(종전의 2급, 이사관)의 단순한 자리 이동까지도 대통령의 재가를 받도록 돼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국정 집행의 핵심인 장·차관과 그 아래 직인 차관보(종전의 1급, 관리관 포함) 보직인사에 대해 직접 챙기는 임명 재가는 당연하다. 하지만 직업공무원 신분이었던 종전의 2급공무원(현 고위공무원단 나급)에 대한 자리 이동 인사까지 사전 대통령 재가를 받게 한 점은 부처 내 책임 장관의 입장을 무너뜨리고, 고위공직자들에게 청와대를 바라보게 하는 해바라기 성향을 갖게 할 수 있기에 하나의 인사폐단으로 지적되어 왔다.

법상 대통령의 임명사항이긴 해도 대통령 한 사람이 장관의 부처 내 인사 제청과 전보 인사에 관해 일일이 직접 검토 후 재가할 수 없는 입장이므로 청와대 비서실이 그 일을 담당하게 된다. 그런 인사시스템으로 각 부처에서 장관이 올린 국장급 이상 전보인사 등 50여 명에 대해 청와대 검토 지연 등으로 인해 공석이 되고 있다. 총리실도 4급이고 안전행정부도 4명에 이르고 있으니 부처 내 국장급 인사이동이 중지된 상태니 국정 수행이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국정지지도에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보다 더 높은 것이 박 대통령의 인사 실패로 귀결되는 마당에 청와대가 부처의 국장인사에 관여해 ‘콩 놔라 팥 놔라’ 한다고 비판받는 중이다. 그런 입장임에도 청와대는 비서실에 인사수석을 신설하고, 인사혁신비서관을 두어 부처 인사에 전문성을 갖게 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대통령의 통치철학이 장관을 통해 국정에 실현되려면 장관의 부처 내 장악력이 핵심 요소다. 그렇다면 과거 참여정부 이전 인사제도와 같이 대통령의 부처 국장급에 대한 보직 결정권은 장관에게 되돌려줘야 한다. 그래야 장관이 국정을 소신 있게 꾸려나갈 것인데, 청와대가 부처 인사까지 장악하려 해서는 득보다 실이 훨씬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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