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알 듯 모를 듯 사전 낌새를 보이기도 했던 7.30 재보선의 결과를 두고, 그 해석에서 나라 안이 시끄럽다. 전국 15개 선거구에 불과했지만 ‘미니 총선’으로 인식된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대로라면 제1야당이 패배했고, 여당이 승리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 여파로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가 사퇴해 비상체제로 들어갔고, 반면 여권에서는 정부는 정부대로, 당은 당대로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치부하면서 표정 관리하느라 바쁘다.

새정치연합의 참패로 제1야당이 전매특허처럼 내세웠던 ‘새정치’가 자연 소멸된 게 아닌가 주변 사람들이 우려한다. 지난 3월, 제1야당은 당명마저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바꾸고 ‘새정치’를 모토로 삼았다. 그러니 새누리당 입장에서 보면 입버릇처럼 말해온 정치 파트너의 ‘새정치’ 운운은 귀에 거슬리는 단어였으니, 의정 현안에서 이견(異見)이 나올 적마다 새정치연합을 향해 “그것이 ‘새정치’란 말인가?” 하고 비아냥해온 전례에서도 그 심정을 알 수가 있다.

혹자들은 7.30 재보선에서 최대 수혜자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인 반면, 가장 크게 정치적 타격을 입은 정치인은 새정치연합 안철수 전 공동대표를 들고 있다. 인기가 상승된 김무성 대표는 차기 대권주자 여론조사에서 16.1%를 얻어 여야 통틀어 첫 1위에 올랐고, 안철수 전 대표는 새정치연합호의 운항키를 맡은 지 4개월 만에 당권 운영 노하우나 당내 자신의 입지를 견고히 심지 못한 채로 도중하차까지 하게 됐으니 그 말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그러기에 김무성 대표는 새누리당 회의에서 마치 부자 몸조심이라도 하는 듯 신중모드로 돌아섰다. 선거 공치사에서도 새누리당이 잘해서가 아닌 국민 몫으로 돌리는 겸손(?)을 부린다. “국민은 새누리당이 혁신하겠다는 각오와 민생 경제를 살려 생활고에 지친 서민의 주름살을 펴 드리겠다는 약속을 한 번 더 믿어보자고 표를 줬다”고 하면서 “모든 기득권 내려놓고 당 혁신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말로 선거 결과에 대해 비장함을 나타내기도 했다.

사실 그 말이 맞다. 이번 선거는 새누리당이 잘해서 유권자가 표를 준 것이 아니라고 본다. 개중에는 후보자 개인의 역량이나 열심히 해서 당선된 경우도 물론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야당의 선거전략 부재와 계속 우려내는 뻔하고 고식적(姑息的)인 행태에 피로감이 쌓인 유권자들이 경고를 주려고 여당을 택한 결과이기도 한데, 이 점을 김무성 대표가 간과하지 않고 바로 인식해 대응하고 있는 모양새가 좋아 보이지만 민심을 향한 그 진정성이 문제다.

김 대표가 국민을 위한 정치철학을 가지려면, 국민으로부터 불신과 외면을 받고 있는 현실 정치에 대한 자각부터 있어야 한다. 한때 국민은 왜 안철수표 ‘새정치’에 환호했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새정치는 어느 개인이 소유할 트레이드마크가 아닌 정치권과 정당 지도자가 지향하고 반드시 구태정치를 청산해야 할 당위적인 의무인 것이다. 이것은 정치권에서 당장에 이룩해야 할 과제로 국민에게 실추된 정치에 대한 믿음을 원상회복하는 길인 것이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요구란 단순하다. 안전의 보장 속에서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여가를 즐기는 편안한 사회를 만들어달라는 것이지만 지금까지 한국정치는 그에 보답하지 못했다. 하나 같이 정치 지도자는 자신과 당의 이익을 우선하는 구태 정치를 보여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정치지도자는 당내에 계파를 만들어놓고, 몇몇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영웅정치를 흉내내어왔다. 우상화된 개인이 통치하는 나라에서는 희망이 없으므로 독선은 청산돼야 한다.

건전하고 건강한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얻는다. 신뢰정치를 위해서는 정당에서부터 변혁이 일어나야 한다. 또한 국회는 정부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협력과 견제라는 본기능에 충실해야 한다. 지금까지 보여 온 것처럼 여당은 정부권력에 들러리 서기에 바빠 야당을 진정한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독선하는 문제나, 야당의 국정 발목잡기, 의사당이 아니라 거리로 뛰쳐나오기 등은 국민에게 정치에 대한 혐오감, 불신감을 가중시키는 구태정치의 표본인 것이다.

이번 선거로 힘을 받게 된 김무성 대표는 국민이 갈망하는 새정치를 위해 정치혁신을 이루어야 할 책임이 있다. 새정치연합도 질질 짤 것도 없다. 여전히 130석에 달하는 제1야당이니 국민의 뜻을 잘 새겨 새정치에 매진해야 한다. 여야가 힘 합쳐 중선거구제 등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개선, 의원수의 조정과 권력의 축소, 의원세비의 공개화, 의회활동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 등 정치 혁신을 보여 구태정치가 청산됐음을 결과로써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7.30 재보선 결과는 ‘새정치’의 소멸이 아니라 이제부터 새정치를 위한 시작을 알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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