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성동 정부서울청사 별관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출처: 뉴시스)

 “문창극 후보 발언, 100년 전 日기독교계 논리 판박이”

[천지일보=정현경 기자]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과거 발언이 연일 구설에 오르면서 문 후보를 비난하며 총리지명 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반면 문 후보의 발언이 교회 강연에서 나온 것이라며 기독교 신앙관으로써 충분히 할 수 있는 발언이란 옹호도 나오고 있다.

문창극 후보의 역사관과 신앙관은 과연 기독교인으로서 바른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언론이 문 후보의 강연을 전체적으로 보지 않고 악의적으로 일부 발언만 교묘히 편집해 왜곡했다는 비판도 있다.

16일 개신교 시민단체 연합회인 ‘선민회’는 KBS 앞에서 규탄집회를 갖고 “문 후보의 강연은 기독교 신앙인으로서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심이 넘쳐나는 훌륭한 강연이었고 신앙고백”이라고 두둔하고 나섰다. 개신교계 보수 측은 대체로 문 후보의 강연은 신앙인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발언이었고 문제가 없다며, 세상적인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같은 개신교계에서도 문 후보의 역사관과 신앙관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개신교계 보수 측이 문창극 후보의 강연을 “기독교적 신앙관에 바탕을 둔 강연으로, 삶의 모든 곳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믿음을 나타낸 것”이라고 두둔한 것과 달리 “100년 전 일본 기독교계가 주장한 억지 논리와 판박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17일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은 일본 메이지가쿠인 대학교의 서정민 객원교수와 전화 연결해 문 후보의 발언은 100년 전 일본 기독교계가 주장한 “일본이 한국의 국권을 침탈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이른바 ‘병합신의론(倂合神意論)’과 같다고 지적했다.

일본에서 종교사학을 가르치고 있는 서정민 교수는 ‘병합신의론’에 대해 “1910년 한일합병 전후 일본 크리스천들이 ‘일본의 병합은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한 내용으로, 한국 땅은 태초로부터 일본 선조들에게 하나님께서 예비해두시고 약속했던 땅이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기독교계는 이에 따라 “한국 병합에 하나님의 뜻이 들어있으므로 일본 정부는 담대하게 한국을 다스리고 제국의 영광을 더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정민 교수는 당시 일본 기독교인은 소수로 입지가 약했지만 여론을 주도할 수 있는 엘리트들로서 자신들의 일본 내 위치를 조금 더 부각시키려고 하는 의도가 있었다고 전했다.

▲ 대한불교조계종 신도들이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철회와 자진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마치고 성명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출처: 뉴시스)

서 교수에 따르면 그들은 우리 민족을 유대민족과 비교하며 “유대민족이 민족적 시련 속에서 성자를 잉태했고 세계적인 민족이 됐다. 그러니까 민족적 시련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고난을 잘 견디기를 바란다”고 충고했다는 것. 덧붙여 “유대민족은 대단히 폭력적이고 거친 반응을 보여 실패했지만 한국은 하나님의 뜻을 순응하는 민족이 됐으면 좋겠다”며 독립운동에 나서지 말라고 가르쳤다.

서 교수는 “현재 일본의 기독교 다수는 당시 한국침략에 대해 통절하게 반성하고 있다”면서 “거기에 영합했던 크리스천 선배들의 잘못을 참회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문 후보가 100년 전 잘못된 역사인식과 신앙관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이러한 논조로 나간다면 당시 민족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크리스천 지도자들의 신앙은 어떻게 되느냐”면서 “대표적으로 안중근 의사 같은 경우 침략자를 하느님의 뜻에 의해 응징한다는 고백을 하지 않았는가? 이러한 안중근 의사의 신앙관과 배치되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역사에서 이루어진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전가시켜 버리는 ‘신종론’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신종론을 따르게 되면 과연 하나님이 악의 세력의 발호까지도 다 담당했느냐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 그는 “문 후보의 발언이 신앙고백적이다, 교회내적인 언어다 혹은 개인적인 신앙을 바탕으로 고백된 얘기라는 것은 신학적으로도, 역사 신학적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기만”이라고 비판했다.

전 국사편찬위원장이자 기독교계 원로인 이만열(숙명여대 명예) 교수는 16일자 뉴스앤조이 인터뷰에서 “문창극 후보의 몇 가지 표현이 강연 전체를 흐려 놨고, 이는 최고위 공직자로 나설 사람에게 치명적”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문 후보의 발언 중 ‘조선 민족에게 게으른 DNA가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가 이조 시대를 허송세월한 것에 대한 고난이며 이는 곧 하나님의 뜻이다’ ‘남북 분단과 한국전쟁, 미국과의 안보 조약이 공산주의를 막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나라 경제 발전이 일본을 따라갔기 때문이다’ 등은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친 역사관과 신앙관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민족 자체가 게으르고 무능하다는 말은 일제가 주장하는 식민 사관과 맞닿아 있다”면서 “DNA라는 건 변함이 없다는 건데, 한국인의 DNA가 게을러 빠져서 그렇게 되었다면 그 DNA를 그대로 갖고 있을 오늘날 한국 사람의 부지런함은 어떻게 설명할 건가”라고 비판했다.

또 ‘우리의 잘못으로 일제강점기를 겪었으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주장과 ‘숙명론’이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했다. 이 교수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고 경계했다. 또 “식민 지배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 당장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은 뭐가 되나”라면서 모순을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 외에도 뉴라이트적인 역사인식, 식민사관, 패배주의 등을 비판하며 신앙관의 문제와 더불어 역사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단정 짓는 결정론적 사고도 문제로 지적했다.

▲ 선민네트워크가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KBS의 문창극 후보자에 대한 악의적 왜곡 보도 규탄’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출처: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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