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김영복 원장

통영비빔밥 못지않게 유명했던 비빔밥이 ‘마산비빔밥’이다. 마산의 언론인 故 김형윤 선생이 1970년대에 쓰고 1973년 12월 5일에 발행한 <마산야화>에 보면 ‘마산비빔밥은 조창(제일은행) 뒤 김점조 집과 복남네 집 비빔밥이 천하일미(天下一味)였다’고 극찬했다.

전기가 없던 시절 마산의 비빔밥집은 집 문전에 석유호롱불을 밝혀 놓고 비빔밥집 임을 알렸으며, 당시 곰탕 값이 15전 할 때 비빔밥 값은 10전 했다고 한다.

이 당시는 선창 방면에 손 씨 할머니와 최대규 집 비빔밥이 맛이 있어 청년들이 두 그릇씩 해치워야 직성이 풀렸다고 한다.

마산비빔밥이 이렇게 맛이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 물 좋은 마산의 장 맛에 미더덕과 조개가 어우러진 육즙으로 무친 나물을 넣고 비빈 마산비빔밥의 감칠맛은 먹어 본 사람이 아니고는 모른다.

곰탕집으로 유명하던 박복년 할머니도 곰탕과 함께 비빔밥을 했었으며, 한동안 마산비빔밥은 ‘마산집’에서 그 명맥을 이어 왔으나 지금은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어느 집이 마산비빔밥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지 필자도 잘 모르겠다. 참 아쉽다.

우리는 이렇듯 지역마다 특색이 있고 맛이 다른 훌륭한 비빔밥 문화를 갖고 있다.

1930년 도산 안창호 선생은 흥사단 창립기념일 행사보고에서 “상해지방(上海地方)에서 본월 13일 본단 제17회 기념일(本月 十三日 本團 第十七回 紀念日)을 좌(左)와 여(如)히 기념(紀念)하였삽기로 자(玆)에 보고(報告)하나이다. 一. 당일 상오 11시(當日 上午 十一時)에는 단우일동(團友 一同)이 단소(團所)에 모여 기념식(紀念式)을 행(行)함. 一. 동일 하오(同日 下午)에는 단우(團友)와 단우(團友)의 가족(家族)과 비단우 중(非團友 中)의 몇몇이 모서양인 원내(某西洋人 園內)에 나아가 점심(點心)을 같이 먹고 여러 가지 운동(運動)과 유세(遊戱)를 하면서 매우 유쾌(愉快)히 지내었는데 이날의 점심(點心)은 각 단우(各 團友)가 일원 (一元)씩 내어 몇 단우(團友)의 집에 나누어 맡겨서 여러 가지 떡과 비빔밥을 만들어 맛나게 먹었음”이라는 기사가 게재됐다.

1921년 이병도 <개성기행문>에는 “약 1시여(約 1時餘)의 관상(觀賞)이 잇슨 뒤 다시 산성내(山城內)로 대(隊)를 반(返)하여 아까 지나오던 대흥사(大興寺)에 들어와 이미 예약(豫約)하엿던 이곳 별미(別味)의 비빔밥을 요긔하고(중략)”라는 기사가 게재된 것으로 보아 비빔밥은 전국 일원에서 일반화 되었던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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