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김영복 원장

‘단군신화의 쑥과 마늘은 한국 나물 문화의 원형’으로 주목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산나물이든 들나물이든 식용으로 하는 나물이 200여 가지나 될 정도로 풍부하다.

조선조의 선비들이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베개를 베고 자는 일을 청빈한 생활로 예찬한 것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문화인류학자 마셜 설린스는 <석기시대의 경제학>에서 산나물과 같은 채취문화야 말로 현대문명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탈출구이자 미래문화의 모델이라고 했다.

농경생활은 곧 곡물 중심의 채식문화를 형성하게 되는데,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토기나 갈돌의 유물은 그러한 식생활을 입증하는 유물들이다. 토기는 곡식을 저장하거나 끓이는 도구로 이용되었을 것이며 갈돌은 곡식을 가루로 빻는 데 이용되었을 것이다.

서구사람들은 농경생활을 거치고 산업사회에 진입하면서 진작 나물을 뜯어먹는 채취문화를 잃어버렸는데, 한국인만은 그러한 변화를 함께 겪으면서도 유독 채취시대의 식문화인 나물문화의 전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비빔밥은 반드시 나물이 있어야 한다. 비빔밥은 전적으로 밥과 나물의 조합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밥 위에 다양한 나물을 얹어서 각자 비벼먹는 음식이다. 나물을 부식으로 한 밥이자 숟가락으로 먹을 수 있는 밥이 비빔밥이다.

밥을 주식으로 하지만 젓가락을 쓰는 문화에서는 우리와 같은 비빔밥이 없다. 젓가락으로는 비빌 수도 먹을 수도 없는 것이 비빔밥이다. 따라서 젓가락만 쓰는 일본에서는 비빔밥을 고양이밥이라 한다. 고양이나 비벼 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비빔밥은 잔치음식이자 제사음식이며 농사철에는 들밥으로 널리 이용되었다. 여기에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은 것이 ‘비빔밥’이다.

고대 우리민족은 야생 콩의 작물화에 성공하면서 콩을 개발하고 메주에 천일염을 사용하여 발효(醱酵)를 통해 간장과 된장을 개발하게 된 것이다.

메주를 장독에 넣고 천일염을 푼 소금물로 발효시켜서 장을 뜰 때 위에 있는 것이 간장이다. 옛날 문헌을 살펴보면 <삼국지> <위지> <동이지> <고구려조>에 고구려 사람들을 선장양(善藏釀)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발효식품을 잘 만든다”는 뜻이다.

잘 지은 밥에 각종 나물을 얹고 간장으로 간을 하여 비벼 먹는 것이 비빔밥의 원형이다. 이러한 비빔밥의 유래를 크게 나눠보면 △농어문화에서 태생된 비빔밥 △군사문화에서 태생된 비빔밥 △노동문화에서 태생된 비빔밥 △의례문화에서 태생된 비빔밥 △사찰문화에서 태생된 비빔밥과 함께 이규태씨의 논거(論據)처럼 세시민속에서 태생된 오신채 비빔밥인 △입춘 비빔밥 등 여섯 가지 유래를 들 수가 있다.

일부 주장처럼 임금의 몽진설이나 묵은 음식처리설은 여기서 지면 관계상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논거가 지극히 약하며 우리의 식생활문화와 역사를 잘 못 이해한데서 비롯된 주장일 뿐이다.

조선 후기까지 전국의 소문난 5대 비빔밥은 ‘평양비빔밥’ ‘해주비빔밥’ ‘전주비빔밥’ ‘진주비빔밥’ ‘통영비빔밥’을 꼽을 수가 있으며, 이중에 3대 비빔밥으로 압축 한다면 해주교반(交飯비빔밥), 전주부뷤밥, 진주화반(花飯비빔밥)이라고 한다. 이러한 비빔밥들은 재료나 조리법이 나름대로 각자의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비빔밥은 이러한 전통적인 특색이 사라지거나 없어져 독특한 맛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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