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첫눈이 내리는 것에 맞추어 그 날 오후, 그 시각에 광화문 기원에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그 날, 그 시각이 11월 18일 월요일, 오후가 아니었나 싶다. 누군가가 갑자기 ‘와! 눈이다!’ 하고 외쳤다. 그 순간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공원이 내려다보이는 기원의 창밖을 향했다. ‘아! 정말!’ 백설이 펄펄 날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탁! 타닥!’ 여기저기서 어지럽게 들리던 바둑 돌 떨어지는 소리가 딱 멎었다. 사뿐 사뿐 쏟아지는 흰 눈발에 사람들이 넋을 빼앗긴 듯했다.

눈은 포근하게 내렸다. 심하게 쏟아지진 않았어도 도심의 잿빛을 순백으로 바꾸어 놓기에는 충분했다. 기원 앞에는 작은 공원이 있다. 그 곳에서 서로 뒤섞여 숲 생태계를 이루는 사철나무와 단풍나무, 소나무, 키 낮은 잡목들의 가지와 잎들이 얌전히 흰 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백설의 율동이 흰 나비의 군무(群舞)처럼 부드럽고 아름다웠다. 이런 양상으로 몇 시간만 더 쏟아진다면 뽀드득 뽀드득 기분 좋게 밟힐 것도 같았다. 은근히 마음속으로 그래 주기를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눈은 섭섭하게도 그런 기대를 빗나가게 했다. 이 날 눈은 그야말로 ‘맛보기’ 첫눈으로 끝나고 말았다.

자연의 조짐은 사람의 생활이나 진운(進運)과 절대로 무관하지가 않다. 이날 눈은 잠시의 강설(降雪) 시간을 고려한다면 결코 인색하게 내린 것이 아니다. 거기에 부드럽고 순하게 내렸다. 이런 점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첫눈이 그러한 것으로 보아 올해는 눈이 많이 내리는 한 해가 될지도 모른다. ‘눈이 순하게 많이 오면 풍년을 예고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우리네 속담일 뿐만 아니라 서양 속담이기도 하다. 자연의 조짐에 대한 해석은 동서양이 크게 다르지 않다. 피차에 보편적으로 통하는 것이 너무나 많다. 이렇다.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여름에 얻는 소득이 크다(Deep snow in winter; tall gain in summer).’ 이는 우리네 것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서양 속담의 한 예다.

어디의 것이든 속담은 수많은 세월 동안 쌓인 생활의 경험과 체험을 반영한다. 그렇다면 이런 동서양의 속담이 말해주는 대로 그날 그 시각, 그처럼 순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시원하게 쑥쑥 내린 첫눈을, 국운과 개인의 명운에 상서로울 조짐으로 느꼈다던가 또는 그것에서 그 같은 예감을 갖게 됐다 한들 결코 생뚱맞다 할 수는 없다. 예감이 좋은 결과를 낳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첫눈 내리는 광경을 광화문 기원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었다는 말은 기실 그것과 관련을 갖는다.

사람들은 그 날 그 첫눈을 보고 무척이나 반색을 했다. 느낌이 좋고 예감이 좋았기에 그리했을 것이지만 전체 중의 극히 일부일망정 여러 사람이 하나 같이 그렇게 느꼈다면 그것은 공동체적 구성원 전체의 긍정적인 염원이나 사고를 드러내주는 것이어서 더욱 긍정적인 것이라 생각되었다. 어떤 사람들끼리는 그와 관련한 덕담들을 주고받았다. 그에 대한 반응들이 놀랍도록 뜨거웠다. 이는 개인의 행복과 국운 융성을 바라는 지금 이 시대 우리 공동체 구성원들의 마음들이 얼마나 뜨겁고 간절한가를 웅변한다. 그것에는 당장 불운을 겪는 사람이나 잘 나가는 사람의 경우에 차이가 없을 것으로 느껴졌다. 이 긍정적인 염원과 사고의 힘, 이는 필시 우리에게 큰 희망을 주는 우리 사회의 성숙한 저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역경에 처한 사람에게는 누구로부터인가 또는 어디로부터인가의 위로와 격려가 재기하거나 심기일전하는 데 있어 최상의 보약이 된다. 그것이 한낱 지푸라기와 같은 미약한 희망을 주는 것일지라도 그러하다. 역경에 처한 사람이 그 날 광화문 기원에서 본 첫눈을 서설(瑞雪)이라고 예감했다면 그는 자연의 징조로부터 큰 위로와 격려를 받았음이 틀림없다. 그것은 그를 역경으로부터 구해낼 긍정적인 영감(Inspiration)이다.

잘 나가는 사람은 어떠한가. 그 같은 사람 역시도 그의 잘 나가는 인생살이를 추동하는 동력의 유지를 갈구하며 그것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에 그에게도 행운이라는 새 동력이 계속해서 주어져야지 그것이 멈추어지면 안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의 사람에게도 올 첫눈이 행운을 가져다주는 서설이 돼야 하는 것은 더 말할 것이 없다. 햇빛과 물 공기의 혜택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돌아가듯이 서설의 예감 역시 특정한 누구의 독점이 될 수는 없다. 또 독점이 되어서도 안 된다.

사회의 평화와 건강한 발전은 험한 폭풍우가 바닷물을 뒤집듯이 하는 계층의 역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 나가는 곳에 제동을 걸 것이 아니라 취약한 곳을 좀 더 각별하고 특별한 관심과 노력으로 부추기고 조장해 끌어 올리고 그늘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국부(國富)와 국민 행복을 최대한으로 키우는 방법이다. 관점을 바꾸어 말할 때는 행여라도 취약한 계층의 피나는 경제 사회적인 신분 상승 노력에 ‘사다리 걷어차기’와 같은 심술이 발동되거나 그것이 제도적으로 제약돼서도 안 된다는 말이다.

인생살이는 경험할수록 길흉화복의 전변(Vicissitude)이며 새옹지마(塞翁之馬)이고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생각이 든다. 행운 끝에 때로는 표박(漂迫)의 고행이 문득 찾아오고 그러다가 또 행운이 불시에 오기도 한다. 그것이 주기적으로 순환하는 듯이 보이기도 하고 뒤섞여 인생살이를 엮어나가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느 경우든 사람이 숙명적으로 져야 하는 자신의 등짐, 말하자면 걸머질 십자가와 같은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므로 잘 나갈 때 너무 교만 떨지 말고 못 나간다 해서 너무 위축되는 일 없이 그저 뚜벅 뚜벅 걸어가는 의연함이 필요해 보인다.

광화문 기원은 널리 알려져 크게 북적거리는 명소는 아니다. 공간이 그리 넓은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조용하고 아늑하며 항상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곳이다. 위치는 서울 도심의 상징, 광화문에 있는 세종문화회관의 뒤편에서 2차선 도로 건너편으로 보이는 새마을 식당 바로 뒤 낡은 건물의 3층이다. 그런데 그 광화문 기원의 운영자가 종로구청장을 두 차례나 지낸 정흥진 씨다. 구청장을 두 번이나 지냈으면서 왜 기원을 해? 하지만 알고 보면 그에게 그 기원은 중요한 밥벌이 터다. 그 수입으로 생활을 꾸려간다. 현직 때 챙긴 것이 없는 청렴한 공복이었던 것 같다. 그는 손님들을 정성껏 섬긴다. 정말이지 나는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그 기원에서 의미심장한 첫눈의 감동까지를 함께 나누었으니 나는 그 기원만을 찾는 평생 단골이 될 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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