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남조의 송무제 유유(劉裕)는 농촌 총각에서 군대에 투신하여 남연(南燕)과 후진(後秦)을 멸망시키며 천하가 놀라는 공을 세웠다. 그의 승리는 동진이 북방의 이민족을 상대로 펼친 전쟁 가운데 가장 큰 승리였다. 세력을 강화한 유유는 마침내 안제(安帝)를 죽이고 그의 동생 사마덕문(司馬德文)을 옹립했다가 AD 420년에 스스로 제위에 올라 국호를 송(宋)으로 정했다. 북방은 19년 후에 북위가 통일할 때까지 여러 나라가 병립했으며, 남방은 송, 제(齊), 양(梁), 진(陳) 등 4개 왕조가 교체되었다. 역사는 이 시대 170년 동안을 남북조시대라고 한다. 유유는 제위에 오른 후에도 ‘전사옹(田舍翁)’ 즉 시골에서 농사짓는 늙은이라고 자칭했을 정도로 검소했으나, 일생을 전쟁터에서 보내느라고 자식의 교육에 주의하지 못했다. 그것이 국정의 혼란을 초래한 원인이었다. AD 422년, 유유가 죽고 태자 유의부(劉義符)가 즉위했다. 그가 소제(少帝)이다. 소제는 황제로서의 자질이 거의 없는 무능력자에다가 오만방자하기까지 했다. 보정대신 서선지(徐羨之), 부량(傅亮), 사회(謝晦) 등은 귀까지 얇은 소제가 자신들을 해칠까 염려하여 폐립할 음모를 꾸몄다. 소제의 동생 유의진은 약간의 문학적 재능이 있어서 사영운(謝靈運), 안연지(顔延之), 도사 혜림(慧琳) 등의 문인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내가 뜻을 얻으면 사영운과 안연지를 재상으로, 혜림을 예주(豫州)도독으로 삼을 것’이라고 떠들었다. 평소에 문인들을 경멸했던 서선지는 유의진에게 그들을 멀리하라고 권했다. 유의진은 범안(范晏)을 불러서 넌지시 말했다.

“사영운은 공소(空疎)하고, 안연지는 옹졸하고 천박하다. 그들과 말이 필요가 없을 정도로 뜻이 맞는 사이는 아니다. 성정을 고려하여 함부로 망언하지 못하도록 격려했을 뿐이다.”

서선지는 정무를 맡은 대신들을 비방한다는 명분으로 사영운과 안연지를 건강에서 내쫓았다. 사영운은 천하의 문장이 한 섬이라면 조조(曹操)의 아들 조식(曹植)이 여덟 말, 자신이 한 말을 차지하며, 나머지를 고금의 문인들이 나눌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무슨 근거로 조식에게 여덟 말을 할당했는지는 몰라도 자신에게 한 말의 재능을 부여한 것은 당송시대에 문학이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기 전이었므로 지나치지 않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뛰어난 문학적 천재였다.

제위에 오른 문제는 사영운을 다시 불러서 비서감으로 등용하고 후대했다. 자신의 명성과 재능을 과신했던 사영운은 정치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문제는 그를 시인 이상으로 대접하지 않았다. 명성이나 재능이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이 중용되자 불만을 품은 그는 병을 핑계로 조정에 나가지 않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결국 누군가가 그의 방종을 탄핵했다. 파직이 마땅했지만, 문제는 그의 체면을 생각하여 병가를 내고 휴직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이 정도에서 자중했더라면 천수를 다하고 그의 장기인 문학적 재능을 발휘하여 뛰어난 작품을 남겼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200여 명의 무리들을 끌고 다니며 곳곳에서 제멋대로 놀아났다. 현지의 지방관이 그의 무리를 반란군으로 오인할 정도였다. 파면된 그는 광주로 유배되었다가, 거기에서도 자신의 성질을 참지 못해 지방관의 모함을 받고 반역죄로 처벌되었다. 강인한 남성미와 멋진 수염을 자랑하던 그는 48세인 AD 433년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순간 자신의 수염을 남해 지원사(祗洹寺)에 시주하여 유마힐(維摩詰)의 상을 만드는 데 사용해 달라는 시인다운 유언을 남겼다. 죽기 전에 그는 다음과 같은 절명시를 남겼다.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지만,
아픔을 참아온 세월은 오래되었다.
내 마음속에 있던 군자의 뜻이,
빛을 보기도 전에 사라지는 것이 한스러울 뿐.
아픔을 참아왔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그는 좋은 의미로 자유롭고, 나쁜 의미로 방종하게 살았다. 그의 수염은 당대(唐代)까지 남아 있었다. 당의 중종시대에 욕망과 정욕의 화신으로 악명을 날린 안락공주(安樂公主)가 지원사에 남아 있던 그의 수염을 가져와 단오절의 풀싸움 놀이에 사용하느라고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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