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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강치’의 작가 백시종 씨

한 노인의 恨 맺힌 주장 담아 “독도 지킨 건 울릉도 경찰”
소설 완성 한 달 전에 노인 별세… 영화로 만드는 게 바람

[천지일보=박수란 기자] 역사가 왜곡됐다며 수십 년간 이를 위해 투쟁했던 노인의 이야기를 소설책으로 펴낸 이가 있다. 바로 ‘강치’의 작가 백시종 씨다.

그는 지난해 지인의 소개를 통해 80대에 접어든 한 노인을 만나게 됐다. 노인은 1950년부터 1965년까지 15년간 울릉도 경찰서 경비과장으로 근무했던 사람이라고 했다. 노인의 손에는 두툼한 서류철이 들려 있었다. 서류들은 ‘독도의용수비대’의 실체를 밝히는 기록을 담고 있었다.

독도의용수비대는 1953년부터 1956년까지 3년 동안 일본 어선과 순시선에 맞서 독도를 지켜낸 민간조직으로 알려진 단체다. 하지만 노인은 이 단체가 날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백시종 작가는 글쓰기 이전에 사실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그림엔 월등하게 재주가 없다고 판단한 그는 손에서 붓을 놓았다. 대신 펜을 잡았다. 기대했던 바는 아니지만 대한일보, 동아일보 등에서 신춘문예에 등단되면서 제2의 예술가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까지 40여 권의 책을 집필했다. ‘강치’는 그의 가장 최근 작품이다. 백 작가는 ‘강치’를 쓰게 된 과정을 이야기하며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했다.

백 작가는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 당장에 책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수필 소재로도 독도에 관해 쓸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하지만 노인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백 작가를 움직였다.

노인에 따르면 불법 상륙하는 일본인들로부터 독도를 지켜낸 것은 ‘독도의용수비대’가 아닌 울릉도 경찰이다. 그 당시 독도에 가기 위해선 90도 절벽을 오르내려야 했는데, 이 때문에 낭떠러지로 떨어져 희생된 경찰 동료가 상당수라고 했다. 게다가 일본인들과의 총격전도 여러 차례 일어났다고 한다. 그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독도를 일본으로부터 지켰다는 자부심으로 살았다. 하지만 이에 관한 모든 기록이 말살되고 날조된 ‘독도의용수비대’만이 남았다고 했다.

백 작가는 “노인은 독도의용수비대가 독도를 수호한 조직이 아니라 남성 정력제로 이름을 떨쳤던 ‘강치’를 잡아 재산을 불렸던 단체라고 주장했다”면서 “더 기막힌 일은 그런 조직이 국가유공자로 떠받들어지며 기념사업회까지 만들어졌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를 알리기 위한 노인의 몸부림은 오히려 역사를 왜곡시킨다며 매도당했다고 한다. 국가유공자들에게 매월 지급되는 지원금에 눈이 어두워 허위 사실을 주장한다고 질타를 받았다는 것.

백 작가는 ‘노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보다 억울한 일이 어디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이에 더해 백 작가가 책을 집필하기로 한 결정적 계기가 있었다.

그는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있는 종로3가의 건물 한편엔 군복을 입고 측량 기기들과 함께 서 있는 동상 하나가 세워져 있다”며 “이 책을 쓰기 몇 해 전부터 이곳을 지나가다 동상을 보게 됐고 동상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동상은 알고 보니 바로 독도의용수비대를 이끌었던 대장이었다. 그는 동상의 신원을 알게 된 바로 그 이튿날 새벽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올 초부터 시작해 5개월 만에 집필을 끝냈지만, 선뜻 책을 출판해줄 출판사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책이 안 팔려 힘든 상황인데 소송을 당할 수 있는 위험요소가 많아 출판하기 어렵다는 답변만이 되돌아왔다”고 했다. 가까스로 출판하겠다는 용기 있는 출판사를 만나 ‘강치’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백 작가는 노인에게 이 책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노인은 책이 나오기 한 달쯤 전에 별세하고 말았다.

그의 바람은 ‘강치’가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이 내용이 영화로 만들어지게 되면 책보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영향력이 커질 것 같아요. 영화로 만들어져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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