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장품 브랜드 엘리샤코이 김훈 대표. 대학교 시절에는 길거리에서 모델 제의를 받기도 했을 만큼 잘생긴 외모가 눈길을 끈다. 옛 친구들의 피부 타입을 아직도 기억하는 눈썰미와 드라마 이야기를 좋아할 정도로 여성적인 감성이 그를 화장품 CEO의 자리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사진제공: 엘리샤코이)


엘리샤코이 김훈 대표

컴퓨터프로그래머에서 화장품 브랜드 CEO로
“남들보다 느리지만 성실한 대기만성 스타일”

[천지일보=김지연 기자] “처음 사업자금이 1000만 원이었어요. 모르니까 용감했던 거지… 지금 다시 돌아가서 하라면 절대 못해요, 너무 힘들었어요”

5년의 직장생활.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결국 사업가로 변신을 택했던 CEO 김훈은 부족한 자금력 때문에 정말 힘들었다는 말을 털어놨다.

30살에 시작했으니 사업은 9년째 계속하고 있는 셈이다. 얼핏 보면 영락없는 모델이다. 실제로 자사 남성용 화장품 광고를 직접 촬영했으니 모델이 맞긴 하다. 그런데 스스로의 존재감은 아내와 함께 두 아들을 키우며 성실하게 인생을 꾸려가는 학부형이다.

사진으로만 그를 보면 오해할 소지도 많다. 약간 껄렁한 스타일이나, 바람이 든 느낌의 부잣집 아들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뒤에 연예인 스폰서가 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고.

김 대표는 “한 번 그래봤으면 좋겠다”며 웃는다. “돈 많은 사람들 얘기가 부러울 때도 있어요. 그만한 자금력이 있다면 회사가 조금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요.”

CEO로서 제품 광고에 등장한 건 비싼 모델비를 아끼는 동시에 제품에 대한 신뢰감을 더할 목적이었다고 설명했다. 김훈 대표가 만든 화장품 브랜드 ‘엘리샤코이’는 국내 로드샵보다 면세점에서 주로 찾을 수 있다. 일본 수출이라는 활로가 먼저 뚫렸기 때문이다.

2006년 당시 비비크림 열풍이 불면서 일본에서는 한국 제품 붐이 일기 시작했다. 김 대표가 만든 제품은 피지컨트롤 기능이 좋다는 장점이 입소문을 타면서 일본 바이어에 낙점돼 수출길이 열렸다. “면세점에도 입점되고 동남아 쪽에서도 연락이 왔어요. 국내는 워낙 경쟁이 치열하니까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해외에서 기회를 얻기가 좀 더 쉬워요. 한류열풍이 받쳐주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그가 인생에서 ‘운 좋게’ 성공가도를 달려왔을 거라는 예상은 사실과 다르다. 디자인 전공으로 대학에 입학했지만 적성이 아니라고 느낀 그는 2학년 때부터 게임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해 독학을 시작했다. 군대도 전산병으로 갔고, 전공자들을 따라잡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주변에서는 반대했다. ‘네가 전공자들을 따라잡을 수 있겠느냐’는 걱정이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하다보면 따라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또 실력이 어느 정도 엇비슷해지면 그때는 남들이 가지지 못한 디자인적 감성, 크리에이티브한 측면이 나만의 경쟁력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졸업 후 5년간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 정보통신 전공으로 석사도 마쳤다. “디자인 전공자라는 핸디캡을 가지고 유명 대학의 컴퓨터 전공자들과 함께 일한 것만도 열심히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서른쯤, 조직 생활에 염증을 느끼면서 평소 하고 싶었던 사업에 눈을 돌렸다. 초기 투자비용이 크고 두각을 나타내기 힘든 프로그램 회사는 아내와 어린 아기를 둔 자신의 형편에 맞지 않았다.

“웰빙·천연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걸 보고 인터넷쇼핑몰을 3년 정도 했어요. 밤 12시나 새벽 1시에도 고객이 전화를 하면 받아서 열심히 상담을 했는데, 피부타입별 고민을 어떻게 응대할지 여러모로 고민하니까 어느 정도 잘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열심히, 정성껏 상담하다보니 한번에 30~40만 원어치씩 구매하는 충성도 높은 고객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3년간 직접 상담하며 고객과 부딪쳐본 경험은 지금까지도 회사를 운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엘리샤코이 브랜드 컨셉은 좋은 품질로 20대의 아름다움을 계속 지켜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요즘은 예쁘다는 말보다 어려보인다는 말이 더 큰 칭찬 아닌가요.”

지난달에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전시회에도 참가했다. 요즘 인기 절정인 CC 크림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우수한 제품으로 세계에 진출해서 한국의 이미지를 격상시키는 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하지만 시련 없는 사람은 없는 법이다. 김 대표도 지금까지 2번의 큰 위기를 넘어야 했다. 먼저는 2008년 당시 비비크림 붐을 타고 일본에서 ‘넘치게’ 주문이 들어왔을 때다. 일본 시장을 이참에 선점해보겠다는 욕심으로 엄청나게 물건을 찍었는데, 돈을 못 받을 위기에 처했다. 무역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도 없다보니 전화로 주문을 받았고, 돈을 못 받아도 피해를 입증할 서류조차 없었다. “중용을 지켰어야 하는데… 3개월간 돈을 못 받을까봐 하루하루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회사가 이대로 망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힘든 과정을 거쳤다는 그의 고백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가슴을 졸이는 몇 달간, 그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일본 외 다른 시장을 뚫어보려 무진 애를 썼다. 3개월 후 다행히 결제가 이뤄졌는데, 그 무렵에는 홍콩 등 오히려 수출국가가 늘어나 있었다.

또 한 번의 어려움은 홈쇼핑 진출이었다. 여태 사업을 하면서 경험하지 못한 큰 금전적 손해를 봤다. 하지만 작년 실패 경험에서 오히려 많은 교훈을 얻고 이번 달에는 다른 홈쇼핑 채널에 도전한다.

“전 어릴 때부터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에요, 빠르지도 못하고, 대신 신중해요. 2번 3번 생각하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해보고. 남들이 1년 만에 이루는 걸 2년 만에 해요, 뭐든지 그래요.”

스스로는 성실한 편이고 ‘대기만성’형이 아닌가 생각도 해본다. 김 대표는 실제로 10번을 시도하면 7번은 잘 안된다고 말한다. 리스크 관리에 힘쓰면서 나머지 3번을 잘해내고 그렇게 하면서 회사를 발전시켜 간다.

“상황을 부정적으로 본다면 실패할 확률이 98%든 99%든 비슷해요. 하지만 전 성공확률 1~2%도 높은 거라고 봐요. 1%짜리 일을 10개 만들면 10%가 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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