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 억울한 국민 없는 나라 만들기 위해 오늘도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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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정부패추방실천시민회 박흥식 상임대표 ⓒ천지일보(뉴스천지)


부정부패추방실천시민회 박흥식 상임대표

법 지키지 않는 국가… 누구 위한 청원·배상제인가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 국회의장 등 30명 고발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오는 11월 7일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기각 등 처분 무효 확인 소송’을 앞둔 부정부패추방실천시민회(부추실) 박흥식(66) 상임대표. 독립기관인 인권위를 상대로 크게 판을 벌인 그는 “그래도 정의는 살아있다”며 한 가닥의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가가 되기를 바라며 뛰는 박 대표를 만났다.

박 대표는 국가기관을 상대로 투쟁하며 20여 년을 고통 속에서 보낸 당사자다. 그는 자신과 같이 억울한 사연의 국민이 두 번 다시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민운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청원권은 국민의 기본권 중 꽃이다. 그런데 이 기본적인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본지 10월 24일자 1면). 이 같은 상황에 박 대표도, 부추실 회원들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다. 이들은 수년간 국가를 상대로 싸웠지만 매번 그 벽을 넘기란 힘들었다. 급기야 부추실은 인권위를 상대로 ‘국회가 현행법을 위반해 검찰에 피해당한 사람들의 인권을 말살하고 있으니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 결과를 청원인에게 통지하라’는 진정을 냈다. 그러나 법령상 처리결과 통지일인 3개월을 훨씬 지난 9개월 만에 각하 통보를 받고 말았다.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소송했는데 피고 부적격으로 각하됐습니다. 사실 기각된 사유가 기관장이 피고인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판결에 따라 국가인권위원회 단체에 소송을 낼 수밖에 없었죠.”

박 대표는 독립기관으로서 공정성을 유지해야 하는 인권위조차 곤란한 사건 해결을 피해가기 급급해 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국가 상대의 소송은 승소율이 낮다”는 박 대표의 말에서는 씁쓸함마저 배어났다.

◆ 은행 고의 부도로 수십억 피해

박 대표의 외로운 싸움은 1990년에 시작됐다. 건실한 중소기업 CEO였던 그는 경북 상주군 공성농공 단지에 대규모 보일러 공장을 신축하던 그 해 2월 26일 날벼락을 맞게 된다. 제일은행 상주 지점에서 어음을 결제할 당시 제일은행에 저축예금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부도처리를 당한 것. 사실상 은행 측의 고의부도였다. 이로 인해 박 대표는 회사 문을 닫고 수십억 원에 달하는 피해를 입게 됐다.

이에 1992년과 1994년 금융감독원에 분쟁조정을 신청했지만 금감원은 두 차례 모두 기각 또는 각하 처분을 했다. 이후 1995년 은행 측과 ‘부당이득금 반환청구’ 소송을 벌여 1999년 4월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함으로써 은행 측의 어음부도 처리와 당좌거래 정지가 불법임을 확인하는 결과를 얻어낸다.

이처럼 재판으로 불법행위가 드러났지만 은행 측은 박 대표의 손해배상 청구를 거부했고, 어쩔 수 없이 박 대표는 1999년 8월 금감원에 시정명령과 담당자의 고발조치를 요구했지만 다시 각하 처분을 받게 됐다.

박 대표는 “내가 입은 피해는 제일은행의 고의 부도에 의한 것이었고, 법원에 의해 그 행위가 불법적이라는 것이 드러났다면 금감원은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구제 절차를 진행하는 게 상식적인 태도가 아닌가”라면서 “제일은행은 나 몰라라 하고, 금융감독원은 대법원 판결을 묵살하는 상황이니 한숨만 나온다”고 밝혔다.

◆ 마지막 카드 ‘국회청원’마저 유명무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어떠한 권리 구제도 받지 못하게 된 박 대표가 최후의 카드로 꺼내 든 것은 ‘국회청원’이었다.

헌법 제26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기관에 문서로 청원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고, 이에 따라 중앙부처나 공기업, 지자체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한 국민은 국회청원을 통해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선 국회청원제도가 치명적인 맹점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기관이 수리한 청원을 받아들여 구체적인 조치를 취할 것인지의 여부는 온전히 국가기관의 자유재량에 속하기 때문이다. 접수를 받으면 반드시 그 처리를 해야 하는 기속행위가 아니고, 더욱이 청원에 대한 결과를 가지고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도 없어(처분성 없음)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라는 비판이 많다.

어렵게 청원을 한 박 대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15대, 16대 국회에 청원을 했으나 국회의원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됐고, 17대 국회에선 노무현 대통령의 청원구제 지시로 국회 청원심사소위원회가 열렸으나 당사자 간 구두합의 요청만하고 끝냈다. 이에 18대 국회에 청원을 다시 접수한 결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조정 방안을 강구하도록 촉구하고 그 결과를 보고토록 가결한다. 당시 국회 정무위에서는 제일은행 측이 박 대표에게 2억 2000만 원의 합의금을 전하라는 조정안을 내놨지만 이 조정안은 박 대표의 피해액 50여억 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현 국가배상제도는 현실과는 동떨어질 뿐더러 해결 능력조차 결여된, 청원인을 철저히 배제시키는 유명무실한 제도임을 절감할 수 있었다”고 꼬집었다.

◆ 국회의장 등 고발… “검찰 수사도 안해”

부추실과 박 대표는 소위원회가 청원법에 명시된 심사, 피해구제, 시정 및 징계요구, 청원 처리기간 90일 준수, 피해 회복 조치, 담당자 고발조치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난 2009년 8월 18대 국회의장 등을 비롯해 국회의원 27명과 전문위원 3명 등 총 30명을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죄목은 ‘직권 남용’ ‘권리행사 방해’ ‘직무유기’ 등이다.

“고발한 후 두 차례나 불려가 8시간, 5시간씩 진술했어요. 그리고 4개월 후 2010년 4월 느닷없이 ‘(피고) 무혐의’란 수사 결과가 통보됐지 뭐예요. 그 내막을 알아보니 검찰청이 수사기록을 보지 못하게끔 ‘열람 거부’를 해버린 게 아니겠어요? 고생 끝에 수사기록을 열어보니 제 진술조서 외엔 어떠한 것도 없었습니다. 대검찰청에서 수사하지 않았더군요. 저는 고발한 이후 무려 7개월하고도 15일이나 아무런 통보를 받지 못했습니다.”

보통 국회의장 등 피고발인이 무죄로 판결나면 고발인은 무고죄로 처벌받는다. 처벌은 10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1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다. 그러나 검찰은 국회의장 등 30명을 고발한 박 대표를 처벌하지 않았다. 고발 내용이 무혐의 처리됐는데 고발인을 무고로 처벌하지 않은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이를 두고 박 대표는 “국회의장 등 피고발인이 죄가 없다는 검찰 주장이 이상한 것”이라고 말한다.

◆ “국가배상제도도 있으나 마나”

청원제도의 실효성에 강한 의문을 느낀 박 대표는 2012년 12월 국가배상심의회에 53억 6000만 원의 배상을 신청했다. 공무원의 과실 또는 고의로 손해를 입었다는 이유에서다. 국가배상법 제2조는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할 때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가했을 때 국가의 배상책임이 발생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배상심의회는 국가배상에 관하여 심의하고 결정하며 이를 신청인에게 송달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또 석연치 않은 일이 발생했다. 박 대표는 배상심의를 신청한 지 4개월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답변도 받지 못했다. 동법 제13조 제7항에 따르면 배상심의회는 사건기록을 송부 받으면 4주일 이내에 배상결정을 해야 한다. 배상심의회가 법률상의 절차를 준수하지 않은 것이다.

박 대표는 “힘없는 사람은 철저히 외면 받는 것이 대한민국 권리 구제 절차의 현실”이라며 “상황이 이 지경이라면 인권 보장제도나 청원법을 포함한 국가배상제도는 있으나마나 한 유명무실한 존재가 아니겠는가”라고 탄식했다.

그는 이어 “정의는 살아있다는 것을 다른 피해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불의와 싸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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