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 노래하는 아빠, 지친 세대를 응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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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밴드 지원하는 ‘화이팅 대디’ 리더 심전무 씨

무료 콘서트로 문화기부… “강남, 문화의 거리 만들고파”
어렵던 시절 생각하며 연습실 무상대여 등 인디밴드 지원
대학 졸업 후 유산 30억 탕진… 재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세상 모든 것 마음먹기에 달려”

 

     
 
▲ 밴드 ‘화이팅 대디’의 리더 심전무(48) 씨
[천지일보=박혜옥 기자] 서울 강남의 한 카페 앞. 행인들은 경쾌하게 흘러나오는 밴드 음악 소리에 발길을 멈추고 카페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콘서트를 관람하면서 바리스타들이 직접 뽑은 커피를 무료로 제공받는다.

삭막한 강남 거리에 문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카페에서 음악을 하는 밴드들 가운데에는 ‘세대에 고개 숙이지 말고 싸우자 우리 아빠들이여’라는 뜻이 담긴 밴드 ‘화이팅 대디’의 리더 심전무(48) 씨가 있다. 건설업자이기도 한 그에게 음악은 어떤 의미일까.

심전무 씨를 신논현역 6번 출구 옆에 위치한 리젠타워에서 만났다. 리젠타워는 심 씨가 세운 15층의 건물이다. 1층에 위치한 ‘카페도로시’에서 심 씨를 만나 5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 벽면엔 공연 포스터들이 즐비하게 붙어 있다. 기자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은 건 사무실 안에 마련된 연습실. 자금이 없어 연습실을 빌리기 힘든 밴드들을 위한 공간이다. 무료라지만 합주실, 작곡가실 등 갖출 건 다 갖췄다.

이곳이 바로 심전무 씨가 중학교 때부터 간직한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 곳이다.

2007년 ‘화이팅 대디’로 데뷔한 그는 건설업과 가수를 병행하고 있다. 작곡가·작사가로도 활동한다. 가수 최욱의 ‘이쁜이 꽃분이’가 그의 손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최근 JTBC ‘그녀의 신화’ 등에서도 그의 곡이 쓰였다. 12월엔 ‘헤이 브라더’라는 신곡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 곡은 자살을 하지 말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음악 문화기부는 그의 또 다른 열정이다. 남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는 것이다. 그는 한 달에 6~7번 강남의 ‘카페도로시’, 홍대 등에서 무료 콘서트를 열고 있다.

그의 문화기부에 뜻을 함께하는 동역자도 생겼다. 심 씨는 김우정 리젠성형외과 대표원장에게 “소외 받은 예술가들에게 자양분의 역할을 해주지 않겠느냐. 예술가들은 힘을 받고 또 도움을 준 우리에게 그 향기는 오래 지속될 것이다”고 제안을 했다. 강남을 홍대 못지않은 문화의 거리로 만들자는 취지에 공감한 김 원장은 심 씨의 제안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그는 돈이 없어 연습실을 빌릴 처지가 못 되는 후배들을 볼 때면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을 떠올린다. “대중문화가 아이돌로 편중되다 보니 실력 있는 뮤지션이 설 무대가 많이 없어요.”
그가 인디밴드 지원에 본격적으로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심 씨는 자금이 없는 그들에게 연습실을 무상으로 대여해줄 뿐 아니라 자신이 기획한 공연에도 우선순위로 캐스팅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심 씨는 “관객과 무대 위 밴드들이 행복하면 나까지 행복하다”며 웃는다.

◆30억 탕진 후 노숙자 생활 그리고 재기

그의 입지는 사회적으로 보면 성공한 위치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그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그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한 건설업체에 입사했다. 그 와중에 부모님께 30억의 유산을 받았다. 그 당시 강남 아파트 한 채가 7~8천만 원이었으니, 30억 원은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하지만 6년 만에 그 돈을 다 탕진하고 노숙자 처지로 전락했다. 6~7년 동안 낮에는 부동산 직원으로, 밤에는 드럼통 갈비살 가게에서 드럼통 닦는 일을 하면서 살았다. 주말과 연휴에도 쉬지 않고 일했다. 돈이 모이면 고시원이나 사우나에서 잤다. 그 외 벌어들인 돈은 친정에 몸을 맡긴 아내에게 부쳤다.

이러한 힘든 삶에도 그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이 있기 때문이다.
“자살을 했어도 수십 번을 했어야 했던 세월이었어요. 하지만 남겨진 애들은 무슨 잘못이겠어요? 가족이 제 마음의 중심을 지켜줬죠. ‘아이들 미래를 쑥대밭 만들지 말자’라고 생각했어요.”

대학시절 여행을 많이 다녔던 심 씨는 이 힘든 시기를 무전여행의 기간으로 여겼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그 사람의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말이 있지요.”

이 같은 경험은 그에게 쓴 약이 됐다. 그는 공부로 힘들어하는 딸에게 “아빠가 살다 보니깐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은 인생의 지혜를 주더라. 일이 뜻대로 안 풀릴지라도 절대 좌절하지 말아라. 오히려 그 힘든 시절이 네게 자양분이 될 수 있다. 사랑한다. 힘내라”라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2004년 부동산 분양에 이어 시행업 등으로 자리를 잡았다. 운이 따랐던 것도 있지만 그의 노력과 열정의 결과였다.

“낼 모레면 50이에요. (이 시대) 아빠들한테 저 같은 사람이 끝까지 버티는 모습을 보여주면 소년 시절 로망을 갖고 있던 그들에게 약간의 위안이 되지 않을까 해요. 성공 여부를 떠나서 힘들어도 끝까지 가 볼 거예요.”

마지막으로 그는 “주변 사람들 모두가 행복해 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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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베 2013-12-03 23:38:05
당신의 행복과, 다른이들의 행복을 위해 사는 사람들 많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