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한국 선수들의 소식이 우리들을 즐겁게 한다. 류현진 선수는 LA 다저스 역대 아시아 출신 최고 신인 투수로 가을 야구를 하고, 추신수 선수는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포스트 시즌에서 홈런을 터트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류현진은 다저스의 아시아 신인 투수 가운데 최고 승수를 기록했다. 1995년 노모의 13승을 넘어섰고 2002년 이시이 가즈히사의 14승과 타이를 이뤘다. 일본인 선수와 비교해 더 잘했다고 하면 왠지 더 기분이 좋아진다. 노모 히데오는 데뷔 당시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지만,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은 그보다 더 훌륭한 기량을 뽐냈다.

지금은 우리 선수들이 해외에서 맹활약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이지만 몇 십 년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서양으로 건너가 이름을 떨친 인물로는 독일의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한 ‘갈색 폭격기’ 차범근 선수 정도다. 지금도 독일에선 ‘차붐’이 대단한 선수로 꼽힌다. 요즘은 손흥민이 차범근의 뒤를 이어 레버쿠젠에서 잘 뛰고 있다.

모든 게 부족했던 시절, 일본에서 차별과 모멸을 견디며 꿈을 이뤄낸 재일교포 선수들도 많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프로 레슬러 역도산과 프로야구 선수 장훈이다.

본명이 김신락이었던 역도산은 스모 선수였다가 프로 레슬러로 전향했다. 그는 1953년 일본 프로레슬링협회를 창설하고 그 다음해에 미국 샤프 형제를 초청해 태그매치를 벌였다. 태그 매치란 2인이 한 팀이 돼 교대로 한 명씩 나와 맞붙는, 2대 2 경기다. 빨간 머리와 파란 눈, 가슴에 털이 무성하게 자란 샤프 형제는 역도산의 가라테 공격을 받고선 드러눕고 말았다.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을 때려잡은 미국의 상징인 샤프 형제를 역도산이 때려잡으니 일본인들이 좋다며 펄쩍 뛰었다. 이후 역도산은 일본의 영웅 레슬러로 이름을 떨쳤다.

역도산의 제자가 ‘박치기 왕’ 김일이다. 김일은 어렵고 힘든 시절 우리 국민들의 영웅이었다. 반칙을 일삼는 덩치 큰 서양 선수나 얄미운 일본 선수들도 김일의 박치기 몇 방이면 훌러덩 나가 떨어졌다. 일본인에 대한 반감이 여전한 시절, 흑백TV일망정 김일의 박치기에 나가떨어지는 일본 선수들을 보면서 너나할 것 없이 박수를 짝짝 보냈다.

1959년에는 재일교포인 장훈 선수가 라이벌 왕정치를 누르고 일본 프로야구 신인왕을 거머쥐어 감동을 안겼다. 장훈 선수는 통산 3085개의 안타와 일곱 차례의 수위 타자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고 1982년 41세로 은퇴했다. 그는 또 왕정치보다 1년 늦게 은퇴했지만 1년 먼저 명예의 전당에 오른 일본 야구계의 전설이다.

장훈은 불구였다. 5살 때 드럼통에 불을 피워 감자를 구워먹던 중 삼륜차에 부딪혀 그만 오른손이 드럼통에 빠지면서 오른손 약지와 새끼손가락이 녹아 붙어버렸다. 그런 손으로 손바닥에 피가 철철 나도록 연습을 했다. 중고등학교 때는 ‘조센징’이라며 괴롭힘을 당하고 폭력범이란 누명을 쓰기도 했지만 이를 악물고 배트를 휘둘렀다. 고교 졸업 후 프로 구단으로부터 귀화요청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그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인으로 일본의 야구 전설이 되었다.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는 우리 선수들이 자랑스럽다. 선수들이 열심히 노력한 덕분이지만, 그들이 해외에서 마음껏 기량을 뽐낼 수 있을 만큼 우리나라도 많이 강해지고 우리 사는 형편도 많이 나아진 것도 사실이다. 다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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