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그가 돌아왔다. 민주당 손학규 상임고문이 올 초 독일 유학길에 올랐을 때만 해도 정치권에서 그의 입지는 곤궁해 보였다. 대선패배로 총체적인 난국에 빠진 민주당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선후보 경선에서 뼈아픈 패배를 맛보았던 손 고문에게는 민주당의 대선패배가 큰 고통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탄식과 아쉬움이 교차할 때 그는 더 큰 미래구상을 위해 훌쩍 독일로 떠났다.

그로부터 8개월여 만에 손 고문은 떠날 때와는 전혀 다른 무게감으로 귀국했다. 인천공항에서 그를 맞는 환영객들의 목소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사경을 헤매고 있는 민주당이 마지막으로 그의 손을 필요로 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박근혜정부의 질주 앞에 민주당은 말 그대로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명색이 제1야당이 이렇게 무능하고 존재감 없이 밀려났을 때가 언제 또 있었는지 궁금할 정도이다. 민주당은 지금의 상황을 ‘민주주의 위기’라고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엄중한 위기국면에 맞서 제대로 싸울 수 있는 강력한 야당의 부재, 그 또한 민주주의 위기가 아닌가.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손학규 고문이 귀국하자마자 언론은 당장 코앞에 다가온 <10.30 경기 화성갑 보궐선거>에 관심을 쏟고 있다. 새누리당에서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가 출마하니 이쪽은 손학규 고문이 출마할 경우 빅 매치가 성사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선지 손 고문 귀국 때도 언론은 화성갑 출마 가능성부터 물었다. 이에 손 고문은 “예술인은 예술로 말하고 정당과 정치인은 선거로 말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우리 당과 민주정치가 저를 필요로 할 때, 제 몸을 사리지 않고 던졌습니다. 그러나 과연 지금이 그 때인지는 의문이 많습니다. 저의 모든 관심은 더 나은 대한민국의 미래 구상에 있습니다”라고 화답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출마한다는 것인지, 아닌지 애매한 표현이다. 그러나 출마하지 않겠다는 쪽에 더 무게가 실려 있다고 봐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구상에 관심이 있다는 얘기는 말 그대로 지금은 큰 그림을 그릴 때라는 뜻으로 들린다. 귀국한 지 얼마 됐다고, 마침 재보선이 있으니 당에서 민다고 떠밀려 출마하는 모양새는 아무래도 미래구상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어디 그뿐인가. 손학규 고문은 현재 야권에서 유력한 대선주자로 여전히 유효한 인물이다. 그 쓰임새에 맞춰 정치행보를 선 굵게 해야 한다. 더욱이 지금 민주당은 최악의 상황이 계속되고 있으며 야권 전체가 어떻게 재편될지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안하다. 그렇다고 대안이 뚜렷한 것도 아니다. 손학규 고문은 그 대안 가운데 가장 유리한 지점을 점하고 있다. 어쩌면 민주당 회생과 더 나아가 야권 대통합을 위한 마지막 카드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서둘러 재보선에 나설 일이 아니다.

민주당에서는 지금도 지난 대선패배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왜 그때 좀 더 과감한 혁신 카드를 내놓지 못했는지 아마 분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정말 치밀하게 차기를 준비해야 한다. 지금 손학규 고문이 출마하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한없이 지체된 민주당 혁신은 누가 완수할 것인가. 당내 친노와 비노를 아우르고 더 나아가 안철수 의원 측, 심상정 의원 측과도 손을 잡을 수 있는 대안이 있는가. 그리하여 야권대통합을 통해 차기 대선에서 압승할 수 있는 인물을 갖고 있는가. 모든 것은 때가 있다. 지금은 미래구상을 하며 큰 그림을 그릴 때다. 소탐대실의 우를 범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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