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한편 여산은 여녹이 이미 북군 본영에서 물러난 것을 알지 못한 채 미앙궁에 들어가 반란을 일으키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궁문에서 저지를 당하고 그 주위에서 어슬렁거렸다.
태위 주발은 여씨 일족과 부닥친다는 것은 아무래도 불안했다. 그래서 주허후를 궁중으로 들여보내기 위해 급히 궁중으로 들어가 “황제를 보호하라” 하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주허가 호위병을 요구해 태위가 천여 명을 보내주었다. 주허후가 미앙궁으로 들어가니 여산이 어떻게 들어왔는지 그곳에 있었다. 그 때가 저녁 무렵이었는데 주허후는 여산을 즉각 습격했다. 여산이 도망을 쳤다. 때마침 강풍이 불어와 여산의 부대는 혼란에 빠져 저항할 여유가 없었다. 주허후는 여산을 쫓아가 낭중부의 변소에서 죽여 버렸다.
주허후가 여산을 죽였다는 소식을 들은 황제는 알자(중개역)에게 부절을 보내 주허후를 위로했다. 주허후가 그 부절을 내놓으라고 윽박질렀으나 알자가 말을 듣지 않았다. 주허후는 알자가 탄 마차에 뛰어올라 부절을 빼앗아 휘두르며 장락궁으로 달려가 위위 여갱시를 죽였다. 그 길로 북군 사령부로 돌아와 그 사실을 태위에게 보고했다. 태위는 그에게 깊숙이 머리를 숙이고 말했다.
“여산이 문제였는데 덕분에 그를 죽일 수가 있었다. 이것으로 천하가 태평이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군사들을 보내 여씨 일족을 사로잡아 남녀노소 구별 없이 죽였다. 신유날에는 여녹을 잡아 죽였고 여수를 태형에 처했다. 또 명령을 내려 연과 여통을 죽이고 노나라 언의 왕위를 빼앗았다. 중신들이 모여서 비밀회의를 열었다.
“지금 소제를 비롯하여 제천, 회양, 상산의 세 왕은 모두가 혜제의 친아들이 아니다. 여후가 핏줄도 아닌 것을 친자식처럼 속인 데 불과했다. 생모를 죽이고 후궁에서 키워 가지고 혜제로 하여금 친자식이라 일컫게 하고 후사로 삼더니 뒤이어 제왕으로 삼았다. 모두가 여씨 일족의 세력을 강화하려는 여후의 술책이었다. 드디어 우리는 여씨 일족의 뿌리를 뽑아 버렸으니 소제나 일부 제왕을 그대로 둔다는 것은 잘못이 아닐까? 그들이 자라서 권세를 휘두르게 되면 이번에는 우리가 죽임을 당할 것이다. 이 기회에 유씨 직계 왕 가운데 가장 적당한 사람을 골라 제위에 오르도록 함이 마땅할 것이오.” 그러자 중신 하나가 나서 말했다.
“그렇다면 제나라 왕이 어떨지. 제왕이라면 도혜왕의 아들이며 그는 알려진 바와 같이 고조의 큰아들이 아닌가. 따라서 제왕은 고조의 적장손에 해당되는 분이니 자격은 충분하오.”
그러나 다른 중신들이 일제히 반대를 했다. “여씨가 외척임을 악용했기 때문에 한나라 종묘가 위태로웠던 것이고 유씨의 공신도 어지럽지 않았는가. 문제는 제나라 왕의 외가인 사씨의 집안이다. 그 집안 장로 사균은 뱃속이 검은 인간이다. 제나라 왕을 황제로 즉위시킨다면 또 다시 여씨와 같은 시대가 되고 만다.”
이어 회남 왕의 말이 나오자 왕이 너무 젊고 외가가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다시 대왕이 어떠냐는 의견이 나왔다. “대왕은 현재 살아 있는 고조의 아들 가운데서 가장 나이가 많으며 인품은 관대하고 인정이 깊다. 외가인 박씨도 조촐한 가족이다. 게다가 나이가 많은 사람을 세우는 것은 합당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인품은 존경을 받는다.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
그렇게 되어서 의견이 모아졌다. 중신들은 비밀리에 사자를 보내서 대왕을 초청했다. 대왕은 사신을 보내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러나 그 뒤 두 차례나 더 권유를 받은 대왕은 마침내 여섯 대의 수레를 타고 장안으로 향했다. 대왕은 윤년(기원전 180) 9월 말 기유날에 장안에 도착하여 대나라의 집으로 들어갔다. 중신 모두는 즉시 그에게 찾아가 옥새를 바치고 황제로 받들었다. 대왕은 중신들의 간절한 요청에 못 이겨 제위에 올랐다. 그가 바로 문제였다.
혜제와 여 태후의 시대 그것은 백성이 전란의 도탄에서 해방되어 군주나 신하 모두가 평화를 원하던 시대였다. 혜제가 팔장만 끼고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