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일이 고비입니다. 거의 가망이 없지만요.”

하지만 의사의 말과는 달리 어머니의 상태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더 나빠지지도 않고 더 좋아지지도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형들과 누나들이 서로 밀약이라도 한 듯 슬금슬금 자취를 감추었다.

“어쩌죠, 영두 아빠?”

아내도 답답한 듯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모십시다, 서울병원으로!”

한한국이 직접 앰뷸런스를 불러 어머니를 산소 호흡기를 붙인 채로 경기도 파주의 두산병원으로 옮겼다.

이틀을 못 넘긴다던 어머니가 조금씩 차도를 보이셨다. 무의식 같았지만 가끔씩 눈도 깜박거리시고 몸도 움쩍거리셨다.

“어머니! 제발 빨리 일어나세요. 그래야 어머니가 공부시켜 주신 제 글씨로 평화지도를 그려 보여드리죠.”
가슴이 미어지는 걸 참으며 한한국이 간절하게 말씀드렸다.

“어머니, 영두 아빠 마음 아시죠? 그러니까 어서 눈 뜨시고 일어나시라고요.”

아내 윤 시인도 어머니의 손을 어루만지며 간구했다. 그러나 한한국 부부의 애타는 마음과는 달리 기약 없는 싸움이었다. 거의 4개월이 흐른 후에야 어머니는 막내아들인 한한국의 집으로 퇴원하게 되었다.

“함마! 꼬꼬 아파?”

아무리 할머니라도 집에 환자가 들이닥치면 무서워 도망부터 칠 텐데 영두는 오히려 할머니에게 다가가 아양을 떨었다.

“윤 시인, 기저귀 좀 많이 사와요. 어른용도 있죠?”

그로부터 어머니가 운명하실 때까지 한한국은 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냈다. 처음으로 그가 어머니의 소변 줄을 갈 때였다. 의식이 없었던 어머니가 부끄러운 듯 몸을 움찔했다.

“어머니, 제가 이렇게 쓰러져 있었어도 어머니가 간호해 주셨을 거잖아요? 어머닌 저에게 이름을 지어주시고 아들이 크게 되라고 글씨도 배우게 해주셨죠. 그런 자식인 제가 뭘 못하겠습니까? 그러니 편히 제 간호를 받으세요.”

그가 어머니의 귀에 대고 속삭이자 분명히 의식이 있으신 듯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다. 어머니의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지켜보면서 한한국은,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하루라도 빨리 한반도 평화지도 <통일>을 완성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 제 이름을 한국이라 지어 주셨죠? 이제 그 이름대로 제가 우리 민족의 숙원인 평화통일을 위해 꼭 이름값을 하겠습니다.”

그러고는 어머니를 그가 글씨 쓰는 모습이 잘 보이는 곳에 눕혀드리고, 가끔씩 뒤돌아보며 작업을 했다. 그러면 어머니가 눈을 감고 계셔도, 그의 붓끝으로 쓰는 한글 한 자 한 자를 신기하게 바라보시며, 분명히 그를 대견하고 기특하게 여기실 것 같았다.

“여보! 어머닌 분명히 당신의 모습을 보고 계시다고요. 그러니까 더 빨리 완성하셔야 해요. 알았죠?”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통일>을 완성하여 그의 작품으로나마 남·북 평화통일을 시켜보자는 의미였다. 한한국은 작품에 몰두하면서도 수시로 어머니의 몸에 욕창이 안 나도록 목욕을 시켜드리고 정성껏 간호를 했다. 연이어 또 다른 한반도 평화지도 <우리는 하나>를 작업하다가 자신도 모르는 새 깜박 잠이 들었다. 꿈속의 어머니는 현실과 달리 건강하셨다. 어머니가 평소처럼 말씀하셨다.

▲ 제2회 자랑스런 대한국민 대상 세종대왕상 수상 (2012.10.9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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