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사면초가다! 여기서 탈출해야 한다.’

앞뒤 가리지 않고 한한국은 숨통을 조여 오는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박석고개로 달려갔다. 조금씩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헤드라이트를 켠 차들이 한한국을 향해 소리치며 부르는 것 같았다. 한한국은 붉게 충혈 된 눈으로 소리쳤다.

“그래, 간다! 마누라가 뭐야? 자식이 뭐야? 평화지도? 흥, 누가 알아주는데?”

그는 외롭지 않았다. 차도 위를 폭주하고 있는 차들이 함께 가자고 부르고 있지 않느냐. 이윽고 눈 깜짝할 사이에 한한국이 쏜살같이 차도로 뛰어들었다.

‘어, 여기가 어디야? 지옥인가, 천국인가?’

그가 겨우 정신을 되찾았을 때 온갖 욕설이 화살처럼 쏟아져 내렸다.

“개새끼! 뒈지려면 혼자 뒈지지! 저런 놈 땜에 어디 운전 하겠어? 앗, 그것도 젊은 새끼잖아!”

욕하는 사람들 사이로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무슨 이유로 삶을 포기하려나? 그 죽을 용기로 다시 한 번 도전해 보게! 나도 젊은이와 같은 때가 있었지. 지금은 비록 버스를 운전하지만. 나 같은 사람을 안 만났으면 자넨 죽었네. 그러니 다시 일어나라고. 알겠나?”

그가 뛰어든 버스의 운전기사였다. 순간 한한국은 자신이 너무나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도망치다시피 집으로 돌아오면서 한한국은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전 죽으려고 해도 안 죽고 살려고 해도 안 살아지니, 차라리 작품을 하다가 죽겠습니다.’

그날부터 한한국은 작품에 죽기 살기로가 아니라 죽기로 매진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아남아선지 지난날보다 글씨에 스피드도 나고 잘 써졌다. 아내 윤소천 시인의 묵묵한 뒷바라지도 더욱 뜨거워졌다.

그러나 다시 한 번 한한국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군대에서와 박석고개에 이어 세 번째로 자살 시도를 하게 된 것이다.

<희망 대한민국>을 만들 때였다. 경제적 형편이 안 좋은 것이야 여느 때와 다름없었지만, 이번에는 무엇보다 육체적 고통이 컸다. 어깨의 통증을 낫게 한다고 뜸을 뜬 것이 잘못되어 살이 썩어가기 시작했다.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이제 그만 이 끔찍한 고통에서 자신을 구원해 주고 싶었다.

한한국은 아파트 10층 난간에 올라서서 줄 타는 광대처럼 양팔을 높이 들었다. 그가 기억하는 것은 거기까지다. 누군가 ‘당신이 그 후에 어떻게, 왜 살아 있느냐?’고 묻는다 해도 한한국은 설명할수가 없다. 왜냐하면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려주어도 이해하지 못하거나, 아예 알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한국은 가끔씩 아내 윤소천 시인을 바라보면서 이런 의문에 싸일 때가 있다. 세상의 남편들은 언제 자신의 아내가 가장 예쁘게 보일까?

“그야 예식장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장인 팔을 낀 채 입장하는 순간 아냐?”

언젠가 한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지만 그건 천만의 말씀이다. 한한국이 아내가 가장 예쁘다고 생각했던 순간은, 아기를 낳아 병원에서 퇴원해서 갓난아기를 안고 집으로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예쁘다 못해 아름답게 느껴졌다. 해산의 후유증으로 얼굴은 부석부석하고 몸매도 망가졌지만, 자신의 분신인 새 생명을 선물해 준 아내가 아닌가. 선녀인들 그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 2011년 7월 17일 희망대한민국 원형백자 국회기증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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