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이 있다. 사는 형편이 너무 힘들어 개보다 팔자가 못하다는 자조다. 얼마 전 어느 방송 프로에서 진짜 상팔자 개들이 등장했다. 어느 개 주인은 자신의 개를 위해 사람도 먹기 힘든 요리를 만들어 낸다고 자랑했다. 개 주인은 미모가 돋보이는 젊은 여인이었다. 그녀는 평소 사람들이 먹기도 힘든 음식들을 잔뜩 늘어놓고선 그것들의 맛이며 재료, 영양가를 설명했다. 출연자들이 앞 다퉈 개밥과 개 간식을 뜯고 씹으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 뿐 아니었다. 개를 발바닥에 올려놓고 드러누워 다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기도 했다. 대개는 어른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하는 놀이다. 아이 대신 개를 그렇게 하는 것은, 그렇게 하면 개 뱃살과 가슴에 마사지가 돼 개 건강에 좋기 때문이라고 했다.

상팔자 개의 삶이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병원에서 종합 건강 검진을 받는 것은 기본이고, 얼마나 잘 먹었는지 뚱뚱보가 된 개가 전문가의 손에 이끌려 살빼기 운동을 했다. 늘어난 뱃살을 주체하지 못하고 헉헉거리자 전문가가 안아 모시고 걸어갔다.

개도 유치원에 다닌다는 사실도 알려 주었다. 여인이 잘 갔다 오라며 손을 흔들었다. 어린 아이를 학교에 보내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개였다. 개가 유치원에 가는 길이란다. 유치원에서 개들이 논다. 놀기만 하는 게 아니고 훈련을 받는다. 똥 누는 장소를 가리고 주인이 걷는 페이스에 맞춰 걷는 연습을 한다. 초시계를 들고 똥 누는 시간을 재고 길을 걷는 속도를 잰다. 개도 배우지 않으면 상것이 된다고 했다. 어릴 때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개 구실을 못한다는 것이다.

강남 양재천에는 산책 나온 사람들로 사철 내내 북적인다. 그곳에도 개 엄마, 개 아빠들이 수두룩하다. “엄마 여기 있다.” “아빠 저기 있네.” 하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면, 개가 뛰어 다니고 있다. 엄마 아빠를 향해 숨을 헐떡이며 뛰어 간다. 개 엄마, 개 아빠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강남 개들이다. 상팔자 개들이다.

개가 주인 잘 만나 잘 먹고 잘 사는 걸 탓할 수 없겠지만, 어쩐지 개 같은 느낌이다. 같은 개인데 왜 이리 느낌이 다른지. 시각 장애인을 위해 길 안내를 하는 개나, 위기에 빠진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개나, 사고 현장에서 사람들을 찾아내는 개나, 공항에서 마약을 찾아내는 개나, 몇 백리 떨어진 옛 주인집을 찾아갔다는 개, 혹은 가난한 네로의 곁을 지켰던 ‘플란다스의 개’ 같은 것들을 생각하면 말이다.

그런 기특한 개가 아니어도, 시골집 마루 밑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얌전하게 지내면서도 주인을 바라보며 살래살래 꼬리를 흔들 줄 아는 개나, 외로운 노인의 곁을 지키며 말동무가 되어주는 개나, 형제자매가 없어 심심한 꼬마 친구들 곁에서 같이 놀아 주는 개나, 아무튼 그런 개들도 예쁘다.

어느 통계에 따르면 애완견이 있는 사람일수록 장수한다고 했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홀로 사는 노인들이 늘고 있는데, 애완견이 외로움을 달래고 삶에 활기를 주는 것이 틀림없다. 오랜 동안 그래왔듯이, 개는 여전히 인간의 곁을 지키는 충실한 동반자다. 그럼에도, 개는 개다워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촌스러운 것일까.

개가 주인 잘 만나 잘 먹고 잘 사는 걸 탓할 수는 없다. 상팔자로 타고 태어난 개가 복이 있는 걸 어쩌랴.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대놓고 자랑은 말자. 방송도 웬만하면 그런 거 보여주지 말자. 개 팔자가 아무리 상팔자여도, 사람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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