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얼마 전 어느 TV 프로에서 개그맨 김병만이 스카이다이빙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4천 미터 상공에서 뛰어내린 그는 짙푸른 캐리비안해를 배경으로 자유낙하를 했다. 44초간 자유낙하하면서 그는 아무런 제약 없이, 새처럼 구름처럼 바람처럼 날았다.

과연 김병만이었다. 개그 프로에서 별의별 희한한 묘기를 다 뽐내며 달인으로 칭찬받았던 그였지만 이날 그는 달인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줬다. 비행기가 고도를 높여가는 와중에도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하더니 비행기에서 뛰어내려서도 마음껏 즐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보여주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 하늘에서 떨어지면서 저렇게 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달인’이 개그 프로에서 싱거운 짓을 할 때는 그저 웃고 말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그게 그냥 연습 좀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그는 그 퍼포먼스를 위해 1년간 65번이나 비행기에서 뛰어내렸고 자격증까지 땄다고 한다. 그는 자격증만 15개나 가지고 있다고 하니 참 열심히 사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솔직히 김병만이 그렇게 시원하게 뛰어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수많은 남자들이 좌절했을 가능성이 높다. 놀이동산의 롤러코스터는 고사하고 엘리베이터만 타도 오금이 저리는 별 볼일 없는 남자들이 한숨을 내쉬었을 게 분명하다. 저 사람은 돈 많고 시간이 남아도니까 저런 짓도 할 수 있다, 라고 위안을 삼을지언정, 내가 겁쟁이라는 사실은 인정하려 들지 않았을 게 뻔하다.

많은 남자들이 사실은 스카이다이빙을 하거나 시퍼런 바다 속을 헤엄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부르릉 거리며 질주하거나 히말라야 같은 곳에서 원시의 숨결도 느껴보고 싶어 한다. 그러한 것들이 수많은 남자들의 로망이다.

하지만 현실은 초라하다. 거실에 드러누워 TV 속 ‘걸어서 세계속으로’나 ‘세계테마기행’ 같은 것을 보면서 간접체험을 할 뿐, 제 스스로는 결코 걸어서 세계속으로 가지도 못하고 세계테마기행을 떠나지도 못한다. 동네 뒷동산마저도 귀찮을 뿐이다.

집이라고 들어가 봐야 호젓하게 책을 읽거나 사색할 제 방 하나 없는 게 수많은 대한민국 가장들의 현실이다. 부부가 함께 쓰는 방이라고 하지만 기실 아내가 주인이기 때문에 여차하면 쫓겨나야 한다. 쫓겨나와 거실에서 뒹구는 것도 편하지 않다. 잘못 누워 있다가는 다른 식구들 발에 밟힐 수도 있고, TV 소리가 크다며 타박을 받을 수도 있다. 실질적인 가정의 서열 제일인자인 아이들 시험기간이라도 되면 거실에 드러누워 TV를 본다는 건 꿈도 못 꿀 일이다.

직장에서 아래 눈치보고 윗사람 눈치 살피며 빌빌 거리고 집안에서도 아내 눈치 아이들 눈치 살피며 허덕거리며 살아가는 별 볼일 없는 가장들이 수두룩하다. 그런 꼴로 살면서 김병만처럼 캐리비안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하거나 미녀 연예인과 함께 정글에서 게를 구워먹는 호사를 꿈꾼다는 건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이겨내야 한다. 팔자가 사나워 별 볼일 없는 인생으로 살고 있다고 할지언정, 힘을 내야지 도리가 없다. 그나마 가장으로서 체면치레나 하고 쫓겨나지 않으려면 힘을 내야 한다. 운동도 하고 여행도 떠나보고 아무튼 뭐 그렇게 하면서 힘을 내야 한다.

시간 없고 돈 없어 그렇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다 제 할 탓이다. 돈 없어도 할 수 있는 게 있고 시간은 내면 되는 것이다. 마음만 있으면, 할 수 있다. 돈 없고 시간 없는 가운데서도 힘내서 열심히 살아보는 것, 그게 별 볼 일 없는 우리 가장들이 나아갈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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