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오락 프로그램들이 큰 인기다. KBS 2TV <우리 동네 예체능>과 MBC TV <스타 다이빙 쇼, 스플래시>가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며 승승장구 하고 있다. 15년째 ‘무병장수’하고 있는 KBS 2TV <출발 드림팀>의 인기를 능가하며 스포츠 오락 프로그램의 대세를 주도하고 있다. 도전과 모험, 용기와 협력, 배려와 조화 등 스포츠의 가치와 매력이 예능의 오락적인 요소와 잘 버무려져 재미와 감동을 안겨 주는 것이 인기의 비결이다.

<출발 드림팀>이 스포츠 오락 프로그램의 터줏대감이라지만, 아득한 시절 흑백 TV를 통해 방영되었던 MBC TV의 <명랑 운동회>가 원조라 할 수 있다. 당시 변웅전 아나운서가 사회를 보았는데, 이 프로로 국민 MC로 자리 잡으며 큰 인기를 누렸다. 고려대 응원단장 출신인 ‘뽀빠이’ 이상용도 이 프로에 출연하면서 스타로 발돋움했다.

서울 정동 문화체육관에서 진행된 <명랑 운동회>는 공굴리기, 대박 터트리기, 굴렁쇠 굴리기, 장애물 뛰어넘기, 이어 달리기 등 딱 초등학교 운동회 수준이었다. 하지만 스타 소리 듣는 연예인이라면 웬만하면 다 출연했다. 죽을힘을 다해 달리고 뒹굴고 자빠지는 인기 스타들의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우습다며 박수를 쳐댔다.

방송 프로의 위력이 대단하기는 한 모양이다. <우리 동네 예체능> 방송 이후 생활체육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왕창 늘었고 동네 볼링장이나 배드민턴, 탁구장이 붐비기 시작했다고 한다. 생활체육협회는 이 프로에 감사패를 전달했다고 한다.

사실 스포츠만큼 감동을 안기는 것도 드물다. 어렵고 힘든 시절 고달픈 마음을 달래고 살아갈 용기를 얻게 해 준 것도 스포츠였다. ‘박치기 왕’ 김일은 ‘일본 놈’들을 혼내 주는 최고의 스타였다. 당시만 해도 일본 사람에 대한 반감이 큰 시절이었기 때문에 김일이 박치기로 ‘일본 놈’을 때려눕히면 속이 다 후련했다. 나중에 어느 프로 레슬러가 “프로 레슬링은 쇼” 라고 말하는 바람에 산통이 깨지긴 했지만, 당시 프로 레슬링은 고단한 삶에 활력을 준 영혼의 아스피린이었다.

파나마에서 카라스키야와 맞붙어 네 번 다운당하고서도 역전 KO승을 거둔 홍수환은 ‘4전 5기’ 신화를 만들었다. 당시만 해도 복싱은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다. 이후에도 장정구 박찬희 김태식 유명우 등 전설의 주먹들이 국민 영웅으로 인기를 모았다. 김득구는 미국에서 챔피언에 도전했다가 사망하는 바람에 안타까움을 샀고 나중에 그의 이야기가 영화 <챔피언>으로 만들어졌다.

축구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지금이야 월드컵 본선 진출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70,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별 볼일 없는 아시아 나라들을 상대하기도 벅찼다. 요즘 세대들은 믿어지지 않겠지만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이스라엘 같은 나라도 버거웠다. 말레이시아에서 경기를 할 때면 수중전에 강한 말레이시아가 운동장에 일부러 물을 갖다 부었다고 현지 아나운서가 전해주기도 했다. 그런 시절이었다.

이제는 올림픽, FIFA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세계조정선수권대회 등 세계적인 빅 스포츠 이벤트들을 모두 치러낸 나라가 됐다. 가난한 시절의 일들이 이제는 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다. 그럼에도 스포츠는 여전히 감동을 안긴다. 깨지고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나 도전하는 선수들의 모습에서 위안 받고 용기를 얻는 것이다.

구경만 하는 스포츠가 아니라 스스로 즐기는 세상이다. 오락 프로 덕분에 생활 체육 인구가 늘어난 것도 좋은 일이고 동네 탁구장이 붐비기 시작한 것도 환영할 일이다. 한 때 유행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좀 그랬으면 좋겠다. 아무튼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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