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호의로 그날부터 한한국은 거의 1년 동안이나 도시락을 얻어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자기 집에 같이 가자고 했다.

친구! 우리 집이 수유리인데 내일은 공휴일이니 같이 가자.”

이제는 서로 친밀해져서 서로 말을 트고 지내고 있었다. 그의 집은 호화 빌라처럼 무척 부유해 보였다. 그의 어머니가 반가이 맞아주면서도, 나이 차이가 나 보여선지 좀 의아한 낯빛을 지었다.

희중이가 그러는데 학원선생이 도시락을 두 개 싸오라고 했다면서?”

그가 화장실을 가느라 잠시 자리를 비우자 어머니가 궁금한 듯 물어왔다. 순간 한국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어들어가고 싶었다.

저녁 때 일찍 들어오는 녀석이 엄마 귀찮게 웬 도시락을 두 개나 싸라는지 몰라!”

그 소리를 들은 후로는 도저히 도시락을 받을 수 없었는데, 친구가 대신 300원을 주곤 했다. 그것으로 라면을 사다가 역시 반등분하여 끓여서 친구와 함께 밥을 말아 먹었다.

한한국은 지금도 그 잊을 수 없는 친구의 눈물겨운 우정에 깊이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한한국은 유명대학에 합격하고도 이번 역시 장학생이 되지 못한 탓에 결국 한한국은 고등학교 입시 때처럼 또 포기해야만 했다. 다시 쓰라린 가슴을 안고 괴로워할 때, 누가 대학을 안 나와도 되는 사법고시 시험을 보라고 권했다. 사법고시에 합격만 하면 판사도 검사도 다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그는 그대로 서울에 머물며 S여대 앞에 있는 독서실에서 고시공부와 붓글씨 쓰기에 정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숙식문제로 서대문구 아현동에 있는 봉제공장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 이름이 한국이라고? 합격이네, 하하!”

이번에도 한샘학원 때처럼 이름 덕택에 면접을 통과했다. 사실 한한국은 봉제공장에 입사원서를 넣으면서 본명을 감추려 했는데 호적등본을 떼어오라고 해서 별 수 없이 밝혔던 것이다.

실은 숙련공이 필요했는데, 자네 이름이 좋아서 뽑는 거야. 그러니까 이름값 해서 열심히 해야 하네!”

봉제공장 사장이 기분이 좋은 듯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입사 후 그가 틈만 나면 법전을 보고 하니까 더욱 남다르게 생각해 주었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해야 할까. 24시간 풀가동하는 봉제공장의 기계 중에 똑딱기계라는 것이 있었다. 옷단추의 똑따기를 만드는 것인데 단순작업이지만 아주 위험한 기계였다. 기계를 조작하는 중에 아차 하면 손가락이 잘리니 조심하라고 항상 주의를 주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한한국이 이 기계를 다루다가 손이 말려들며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가 눈을 떴을 때는 병원의 입원실이었고 옆에서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의사선생님! 상태가 어떻습니까?”

위험합니다. 어쩌면 손가락을 절단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뭐라고? 내 손가락을 잘라야 한다고?’

너무 놀라고 기가 막혀서 눈을 들어 바라보니 봉제공장 사장과 담당의사가 환자의 상태에 대해 의논 중이었다.

그건 안 돼요! 붓글씨는 어찌 쓰라고요?’

한한국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붕대가 감긴 손은 오른손이 아니라 왼손이었다. 상처의 통증이 어찌나 심한지 나뒹굴 정도로 아팠지만 당장 절단하자고 할까봐 아야 소리조차 못 냈다.

한한국·이은집 공저

▲ ●작품명: 칭찬 ●제작년도: 2013년 ●작품크기: 높이 70㎝ x 둘레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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