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아, 이제는 학교에 너의 서예실을 따로 마련해 줄 것이니 더욱 정진하여라.”
화순 이양중학교 2학년 때 그가 마음껏 붓글씨를 쓸 수 있게 학교에서 과학 자료실 한편을 막아주었다. 이때 한국이 지필묵을 벗 삼아 서예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담임선생님한테 지독한 매를 맞은 후에 반장 자리를 내놓았기 때문이었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도 어머니는 용이 새겨진 좋은 벼루와 붓과 종이를 사주셨다. 이 벼루가 두 개나 닳아질 정도로 열심히 했고 붓은 수백 개가 해어졌다. 한국은 붓글씨뿐 아니라 공부도 매우 잘했다. 그의 사춘기 시절에 고민이 있었다면 오직 붓글씨와 공부에 대한 고민뿐이었다. 그 후에도 어머니는 빚을 내서라도 계속 한한국에게 한학과 붓글씨 공부를 시켰다.
“한국아, 이제 우리 동네 훈장님한테는 다 배웠으니 이웃 마을의 서당으로 가거라잉.”
그렇게 초등학교 때 첫 스승님한테 붓글씨와 사서삼경까지 배웠다면, 두 번째 스승님께는 그 두 가지 외에 서화를 더 배웠다. 특히 두 번째 스승님은 아버지의 친구로 추사(김정희)의 제자의 제자였던 분이었다.
“난 추사의 제자인 스승님께 글씨를 배웠다. 그 스승님의 글씨는 비단결 같았느니라. 붓길의 흐름은 마치 신비로운 백사(白蛇)처럼 매끄럽게 미끄러지셨다.”
스승님의 말씀에 한국이 깜짝 놀랐다. 아주 어렸을 때에 뒤뜰의 산돌에서 잡았던 백사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 그렇다면 나는 언제쯤 스승님의 흉내라도 내볼 수 있을까?”
한국이 이런 소망에 빠져 있을 때 스승님이 그에게 말씀하셨다.
“한국아! 넌 글씨의 큰 사람, 대명필이 될 거다. 넌 빨리 쓰지 않아서 좋구나. 너를 나의 1대 제자로 삼겠다. 네가 글씨를 그린다고 했는데 그렇게 천천히 그리다 보면 결국 써지게 되느니라. 너는 서예의 정도를 가거라.”
그러면서 두 번째 스승님은 한국에게 입춘 때나 한가위가 되면 휘호를 몇 점 써주시기도 했다. 한국은 스승님의 글씨가 정말 좋았다.
“세상이 너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슬픔의 날이 지나면 기쁨의 날도 오리니…….”
꼭 푸시킨의 시가 아니더라도 한한국은 그때의 고난과 역경이 오늘의 그를 있게 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느려터진 미련함이 세계 최초의 평화지도를 만들게 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요즘 청소년의 자살이 많은 건 너무나 빠른 세상에 잘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조건 빨리 출세하고 빨리 성공하고 빨리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그들을 죽음의 구렁텅이에 몰아넣는 것이다.
어떤 분야에서 장인이나 명인 또는 스타 같은 사람이 나오려면 그 혼자서는 안 된다.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조기교육과 특히 가족의 헌신적인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한한국의 경우도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끝까지 뒷바라지해 준 어머니의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기에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한국·이은집 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