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먼저 한 일은 중국집 배달이었다. 그런데 매일같이 주인한테 따귀를 맞았다.

“야, 이 자식아! 눈깔은 어디 쓰라고 달린 거야?”

사정은 이러했다. 배달을 나가면 시골에서 올라온 지 얼마 안돼 길을 잘 못 찾고 헤매게 된다. 게다가 그 시절엔 랩도 없어 철가방을 들고 조심해서 걸어도 자장면이나 특히 짬뽕은 출렁거려 서로 뒤섞여 버리게 되니, 음식을 주문한 사람들이 화가 나서 퇴짜를 놓곤 했다.

“어? 이건 자장면 짬뽕을 아주 꿀꿀이죽으로 만들었잖아!”

왼쪽 오른쪽 번갈아 가며 따귀를 맞고 비틀거리는 한국에게 주인아저씨가 소리를 질렀다.

“에라, 이 새끼야! 배달 때려치우고 주방에 가서 접시나 닦아!”

접시닦이라고 쉬울 리 없었다. 쉬지 않고 서서 그릇만 닦다 보니 어찌나 힘든지 허리가 펴지지 않았다. 결국 두어 달 만에 중국집을 나와 이번에는 신문배달을 했다.

그때 서대문 충정로에 있는 한샘학원에서 지도원을 뽑는다는 벼룩신문 광고가 눈에 띄었다. 한국이 당장에 찾아가 면접을 보았는데, 뜻밖에도 이름 때문에 쉽사리 합격이 되었던 것이다.

“이름이 뭔가?”

“한한국입니다.”

“한한국? 그거 한샘학원이랑 잘 맞는 이름이네! 좋아, 합격!”

그래서 당장 한샘학원에서 일종의 장학생인 지도원이 되어 수강료 없이 공부하게 되었다. 아무리 대입검정고시에 합격했어도 대학을 가려면 입시공부를 다시 해야 했기에, 강의실 청소와 강사보조로 온갖 심부름을 다 하며 부지런히 뛰어다녔다.

그런 와중에도 한국은 여덟 살 때부터 써온 붓글씨는 버릴 수가 없어, 항상 가방에 붓과 벼루와 종이를 가지고 다니며 틈틈이 연습을 했다. 점심시간의 짬을 이용하여 지도원실에 앉아 붓글씨를 연습하는데 누군가 옆으로 다가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수강생으로 낯이 익은 학생이었다.

“글씨가 명필이네요.”

그는 서너 살 위였지만 한국에게 말을 놓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학원에 다니는 일반 수강생들과 달리, 한국은 검정고시를 최연소로 합격했기 때문에 그처럼 나이가 아래였던 것이다.

“아, 그냥 취미로 써요.”

“그래요? 저, 내 도시락 있는데 먹을래요?”

“도시락이오?”

“친구라고 불러도 되죠? 나이는 내가 위지만 지도원이잖아요?”

당시 한한국은 인천 송내역 근처 빌라 단칸방을 빌려 살았는데 새벽밥을 먹고 오면 점심을 싸오지 못해, 라면 하나를 사다가 반동강해서 점심과 저녁으로 때우고 있었다. 고향에서도 늘 배를 곯았지만 한창 왕성한 열여덟 나이에 이런 식사로는 견디기 힘들 만큼 배가 고팠다. 뱃속에 거지가 들어앉아 아우성을 치듯 쪼르륵 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부지기수로 화장실로 달려가 남몰래 수돗물로 배를 채우곤 했다. 바로 그런 상황을 그가 알아챈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 학원에 다니는 수강생들은 대부분 부유층이어서 도시락을 싸오는 학생들보다 나가서 사먹는 경우가 더 많았다.

“자, 그럼 이 도시락 먹어요.”

이윽고 그가 한한국에게 도시락을 건넸다.

“아니, 웬 도시락이죠?”

“집에서 두 개 먹는다고 싸왔어요. 하지만 난 6시에 끝나니까 남거든요.”

한한국·이은집 공저
 

▲ ●작품명: 용서 ●제작년도: 2013년 ●작품크기: 높이 40㎝ x 둘레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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