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11일 저녁 그를 문상할 때, 한국남자농구는 16년 만에 세계선수권대회 본선에 올랐다. 안타까움과 기쁨이 교차했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벌어진 아시아 농구 선수권대회 3-4위전에서 대만을 물리치고 3위까지 주어지는 세계대회 본선 티켓을 따는 순간을 병원 장례식장에서 스마트폰 DMB 생중계를 통해 지켜본 대부분의 농구인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도 추락한 한국농구를 재건하는 절호의 기회를 붙잡았다며 기대를 걸었다.

김재웅(70) 전 여자농구대표팀 감독. 그는 마지막 암투병을 하면서 한국농구를 걱정했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 마닐라 현지로 출발하는 박한 대한농구협회 수석 부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남자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많은 격려를 해주기를 바란다”며 “이번 대회에서 성공해야 한국농구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월 대한농구협회장 선거를 앞두고 농구인들이 한국농구의 바른 비전과 미래를 위해 한데 뭉쳐야 한다며 실낱같은 목숨이 떨어져 가는 가운데서도 농구인 출신 협회장의 당선을 위해 여론을 모으는 데 앞장을 섰다. “한국농구가 최악의 위기에 빠졌다. 올림픽 본선에 나간 것도 오래됐고, 아시아 무대에서도 경쟁력을 잃었다. 이렇게 한국농구가 추락한 것은 농구인들의 잘못이 크다. 농구인들이 함께 뭉쳐 다시 일으켜 세우지 않으면 한국농구의 앞날은 암담하다”며 농구인들의 화합과 단결을 호소했다. 이종걸, 한선교 국회의원과 농구인 출신 방열 전 건동대 총장이 경합한 대한농구협회장 선거서 ‘백의종군’한 그의 헌신적인 자세와 농구를 위한 깊은 충정이 호소력을 발휘한 때문인 듯 경기인 출신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방열 회장이 극적으로 당선됐다.

수년 전 대장암 수술을 받고 쾌유했다던 그의 몸은 올초 재발돼 뼈, 폐까지 전이돼 병세가 깊어져 갔으나 농구인 출신이 협회장을 이끌어나가는 데 큰 만족감과 기대감을 보였다.
한국농구는 방열회장 취임 후 체제와 시스템 재구축과 여러 국제대회 등 에 출전하며 힘찬 재기의 시동을 걸었다. 심판 및 코치 강습회를 개최해 경기력 지도역량을 강화해 나갔으며 동아시안 남자농구대회서 중국을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청소년 남녀팀도 세계 대회에 출전해 국제 경쟁력을 쌓았다.

이 중 아시아 남자농구선수권대회는 올해 가장 역점을 두었던 대회였다. 번번히 중국의 위세에 밀리고 이란, 레바논 등 중동팀에도 뒤져 한국팀은 이미 정상권에서 밀려난 지 오래됐다. 1998년 그리스 세계선수권대회 이후 본선에도 진출하지 못한 것은 물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올림픽 무대에도 나가지 못해 극심한 부진의 터널 속에서 악전고투하던 터였다. 만약 이번 아시아 대회서도 성적을 못내 세계대회 진출권을 획득하는 데 실패할 경우 한국농구는 당분간 회생의 길을 찾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유재학 감독이 이끄는 한국팀은 NBA 출신 귀화 선수 등을 앞세운 이란, 필리핀, 대만, 레바논 등과 힘든 경기를 벌일 것으로 예상됐다. 실제로 대회 뚜껑이 열리자 쉽지 않았다.

예선전에서 난적 중국을 물리치는 성과를 올렸으나 이란에게 패하고 준결승서 NBA 출신 2명이 버티는 홈코트의 필리핀에 일대접전 끝에 막판 역전골을 허용, 아깝게 패배했다. 빼어난 선수들의 개인기를 앞세우고 2만 관중의 열띤 성원에 힘입어 필리핀은 한국팀을 물리쳤다. 3-4위전에서 NBA 출신이 버틴 대만을 초반 강력한 더블팀과 수비로 봉쇄하며 다득점에 성공한 한국팀은 마침내 16년만의 세계대회 진출의 쾌거를 달성했다.

고인이 생전에 ‘형님’으로 깍듯이 모신 이인표 한국농구연맹 패밀리 회장은 “한국남자농구가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못내 아쉽다”며 “고인이 한국농구를 위해 쏟아온 열정과 사랑을 생각해 볼 때 앞으로 남은 농구인들이 고인의 높은 뜻을 잘 살려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장례식장 한켠에는 대한농구협회 방열 회장, 한국농구연맹 한선교 총재, 한국여자농구연맹 최경환 총재, 각 남녀 프로팀과 아마추어팀 농구팀에서 보낸 조화가 줄이어 놓여져 마지막 떠나는 고인을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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