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한국체육대 학장과 체육인재육성재단 이사장을 지낸 한국 레슬링의 원로 정동구 선생은 레슬링이 올림픽에서 다시 살아났다는 소식을 듣고 졸인 간담을 쓸어내렸다.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하고,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양정모가 대한민국 건국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딸 때, 레슬링 국가대표팀 코치였던 그는 국제올림픽 위원회(IOC)집행위원회가 금년 초 레슬링을 퇴출시키기로 결정하자, 노심초사했다. “어째,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라면서 불안해했다.

1896년 제1회 아테네올림픽에서부터 단 한 번도 제외된 적이 없는 레슬링이 올림픽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올림픽에서 오랜 전통과 역사를 쌓아왔던 레슬링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한국스포츠의 메달 전략종목으로 효자역할을 했던 레슬링이 올림픽에서 제외된다면 한국 스포츠에게도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레슬링은 올림픽에서 남게 됐다. 지난 주말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49표를 획득, 야구, 소프트볼과 스쿼시를 밀어내고 2020 도쿄올림픽과 아직 개최지가 결정되지 않은 2024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게 됐다. IOC가 당초 레슬링을 퇴출시키기로 했다가 방침을 바꾼 것은 레슬링의 자기 혁신과 리더십을 높이 샀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IOC 15인 집행위원회는 레슬링이 승부가 불분명하고 재미가 없다는 이유로 퇴출시키려 했다. IOC는 올림픽 규모를 줄이고 최대 젖줄인 TV 중계권료를 더 벌어들이기 위해 TV 시청자들에게 관심과 호응을 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레슬링을 퇴출종목으로 지목했던 것이다.

프로레슬링보다도 인기가 없고 스타도 부재한 것도 레슬링이 찬밥신세로 전락한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IOC의 이런 방침은 많은 반발을 샀다. 고대 올림픽의 핵심종목이었던 레슬링을 올림픽 흥행을 위해 없애는 것은 올림픽 정신을 크게 훼손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국제 레슬링협회(FILA) 등 레슬링계도 레슬링이 올림픽 종목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껴 대대적인 자기혁신과 개편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FILA 회장이 교체되고, 남녀 체급 종목을 조정하고 일부 경기룰도 바꾸었다. 또 정치적으로 대결을 일삼던 미국, 러시아, 이란 등 회원국들이 모처럼 손을 잡고 단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노력이 주효했기 때문이었을까. IOC는 레슬링을 없애기로 했던 집행위의 결정을 번복하고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키로 했던 것이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라는 올림픽 기본 정신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고대 올림픽부터 스포츠의 원초적인 특성이 살아있는 레슬링의 존속 결정을 내렸다. IOC의 결정은 충분히 환영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상업주의에 물들지 않고 올림픽의 근본정신을 지키려 한 노력은 높이 살 만하다. 

정동구 선생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번에 레슬링이 올림픽에서 사라졌다면 올림픽 정신이 크게 훼손될 법 했다”며 “인간의 용기와 의지, 인품 등 기본적인 소질을 키울 수 있는 레슬링은 다른 어느 종목보다 탁월한 장점을 갖고 있는 종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많은 종목이 경쟁하는 올림픽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레슬링도 낡고 고루한 이미지를 벗고 항상 노력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한다”며 “한국 레슬링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를 모으기 위해 자기혁신 작업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며 레슬링의 발전적인 자세를 주문했다.    

이번 IOC의 레슬링 존속결정은 스포츠 정신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 같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가야 하는 스포츠경기에서 항상 노력하고 도전하는 정신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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