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서울 동대문에서 장충동로를 따라 차를 타고 가다 지금은 사라진 추억의 스포츠 명소를 바라볼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 장소는 동대문운동장과 장충체육관이다. 동대문운동장은 지난 2008년 도시 현대화 계획에 따라 철거됐고 그 자리에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와 시민 공원 설치 공사가 한창이다. 내년 3월 개관을 목표로 막판 단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는 우주선을 연상케 하는 환상적인 곡선과 조형미를 갖춘 초현대식 건물로 자리잡아가는 모양새다. 한동안 사람 키를 훨씬 넘는 펜스로 둘러쳐진데다 육중한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서 예전 동대문운동장의 모습은 전혀 찾을 수 없다.

동대문운동장은 철거이전만 해도 서울 시민은 물론 전국에서 올라온 지방 사람들에게 스포츠의 꿈과 낭만을 선사했던 멋진 장소였다. 1970년대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고교야구가 열리는 날이면 관중석이 만원사례를 이루었고, 장안의 관심은 온통 동대문야구장으로 쏠렸다. 펠레와 에우제비오의 방한경기 등 각종 축구 A매치가 열렸던 동대문축구장은 축구팬들에게 축구에 대한 감성과 애정을 불어넣어 주었던 추억의 경기장이었다.

동대문 운동장 지척에 있는 장충체육관은 복합 문화공간으로 변신하기 위해 탈바꿈하고 있다. 서울시는 장충체육관을 리모델링하기로 결정하고 옛 대형철골 돔 트러스 등 주요부재는 보존하는 가운데 리모델링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5월 착공해 현재 50%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는 장충체육관 리모델링 사업은 오는 12월 완공 예정이다. 1960년대 초 필리핀의 기술지원을 받아 완공됐던 장충체육관은 프로권투 김기수가 한국 최초로 세계챔피언에 올랐던 장소였으며 ‘박치기왕’ 김일이 일본의 안토니오 이노키와 세기의 프로레슬링 대결이 벌어졌던 곳이다. 프로복싱과 프로레슬링은 물론 농구와 배구의 명승부들이 펼쳐져 많은 스포츠 팬들은 장충체육관에 대한 향수를 결코 잊을 수 없다.

동대문운동장과 장충체육관에 대한 철거와 개보수는 스포츠의 추억이 깊게 스며든 스포츠 명소들을 유지하고 싶은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도시 현대화라는 명목으로 강행됐다. 삭막한 도시의 삶속에서 스포츠를 통해 스트레스를 발산하며 즐거움과 흥을 키웠던 도시인들은 기억의 장소로 두 장소를 남겨두고픈 마음이었으나 여의치 않았다. 동대문운동장과 장충체육관이 어떤 방식으로 새롭게 탈바꿈하더라도 스포츠를 사랑하던 많은 이들의 소중한 추억과 기억을 되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추억의 스포츠 장소가 사라지는 것에 많은 걱정을 했던 체육계에 얼마 전에 별로 달갑지 않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추억 연휴가 시작되기 며칠 전, 문화재청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태릉일대의 ‘완전 복원’을 위해 능제복원 시행안을 보도자료를 통해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태릉클레이사격장 부지에 대해 훼손 전의 지형도 고증과 관계 전문가 자문, 문화재위원회 회의 등을 거쳐 복원설계를 완료하였으며, 9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공사비 약 27억 원을 투입해 복원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또 태릉내의 사격장, 수영장, 선수촌 등 각종 시설을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체육회 등 관련기관과의 협의를 통해 철거를 한 뒤 능복원사업을 시행하기로 한다는 내용이다.

문화재청의 발표대로라면 태릉선수촌은 철거될 운명에 놓이게 됐다. 동대문운동장과 장충체육관에 이어 태릉선수촌도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인 것이다. 태릉선수촌이 만약 철거된다면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각종 국제무대에서 스포츠 한국을 이끌었던 역사의 자취와 흔적들이 고스란히 없어질 수 있기 때문에 동대문운동장, 장충체육관보다는 훨씬 미치는 충격파가 클 것으로 우려된다. 1965년 아시아 지역 제일의 조직적이며 근대적인 선수촌으로 개촌한 태릉선수촌은 한국이 스포츠 강국으로 올라설 수 있게 하는데 많은 역할을 하며 국내외 체육인들의 부러움을 샀다. 만약 태릉의 역사적 보존을 위해 태릉선수촌을 철거한다면 피와 땀, 눈물을 흘리며 이룬 근대 한국 스포츠의 위대한 역사를 증언해 줄 중요한 유물이 사라지게 된다. 한국 스포츠는 태릉선수촌을 빼놓고는 어떤 얘기도 할 수가 없다. 태릉의 보존이 중요하지만 현대 한국 스포츠를 일궈낸 태릉선수촌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할 수 있다. 동대문운동장, 장충체육관과 같은 전철을 더 이상 밟으면 정말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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