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잠실종합운동장이 축구를 통해 긴 잠에서 깨어났다. 상암경기장으로 ‘축구 메카’ 자리를 내준 이후 13년 동안 잠을 자고 있다가 부활한 ‘잠실 A매치’는 필자를 비롯한 축구팬들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것도 숙명적인 한일 경기였으니 말이다.

이날 우리나라 응원단 ‘붉은 악마’와 일본 응원단 ‘울트라 닛폰’은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응원전으로 그라운드에 못지않은 뜨거운 양국 장외 싸움을 펼쳤다. 붉은 악마는 이순신, 안중근 걸개그림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대형 현수막을 내걸며 대일 민족 감정을 고취시키고자 했으나 전반전이 끝난 뒤 대한축구협회가 강제로 이를 철거해 후반 한때 응원을 중단하기도 했다. 울트라 닛폰은 일출처혼(日出處魂-일본의 혼이 여기 있다) 질풍노도(疾風怒濤-몹시 빠르게 부는 바람과 무섭게 소용돌이치는 큰 물결) 등 일본에서 직접 만들어 가져온 대형 플래카드를 펼치고 일장기를 앞세워 경기 내내 응원전을 벌였다.

이날 경기를 보면서 잠실에서 있었던 한일 라이벌 축구의 명장면을 떠올렸다. 비록 이날 경기서 1-2로 일본에 패해 아쉬움을 주었지만 잠실경기장은 축구 한일전과 깊은 연관을 갖고 있다.

1984년 서울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10만 명 관중 수용능력으로 만들어진 잠실종합운동장은 특히 축구 한일전과 깊은 연관이 있었다. 1985년 멕시코월드컵 최종예선을 위해 일본을 처음 잠실로 불러들인 한국은 허정무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고 32년만의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월드컵 본선 8회 연속 진출의 역사가 잠실에서 시작된 셈이다. 김정남 감독과 조광래 등 국가대표 선수들이 대형태극기를 들고 환호하며 경기장 트랙을 돌았던 것이 엊그제 일 같다.

1997년 11월 잠실에서 일본에 0-2로 패했던 한국은 이듬해인 1998년 4월 일본과의 평가전을 통해 설욕전에 성공했다. 당시 폭우가 내리는 속에서 경기를 펼친 한국은 1-1로 맞서던 후반 황선홍의 나래차기 슛으로 결승골이 터지며 2-1,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황선홍의 이 슛은 역대 한일전에서 최고의 골로 평가받고 있다.

잠실 A매치의 마지막 한일전은 2000년 4월로 기록된다. 한국은 하석주의 통쾌한 왼발 아웃프런트킥으로 일본 골대를 가르며 1-0으로 승리하며 ‘잠실 한일전’ 역대 3승 1패를 기록했다. 이후 축구 A매치는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모두 열려 잠실벌 축구 회전은 축구팬들의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었다.

허나 이날 오랜만에 한일전의 추억을 더듬으며 경기를 감상하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경기장 운영 실태를 보곤 많은 실망을 했다. 아직도 예전의 운영 시스템이 고쳐지지 않고 재현됐다. 이날 찾은 잠실종합운동장은 최신식 시설을 갖춘 상암월드컵경기장에 비해 잠실종합운동장은 여러 면에서 불편한 점이 많아 보였다. 플라스틱 관중석 자리, 부족한 화장실과 편의시설 등은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었고, 특히 주차장은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날 프로야구 경기와 함께 열려 운동장 주차능력을 초과해 경기시작 1시간 전 대부분의 관중 승용차 출입을 금지시켰다. 필자는 잠실경기장 주위 도로를 여러 번 돌다가 잠실아파트 인근 도로에 불법주차를 하고 경기시작에 겨우 맞춰 입장할 수 있었다.

스포츠는 사회제도의 하나이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경기의 모습도 바뀔 수밖에 없다. 한일전의 역사도 점차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과거 한국이 일방적인 우세 속에 진행됐던 한일전은 최근 들어서는 오히려 일본이 앞서 나가고 있다. 오랜만에 잠실 A매치를 보면서 그동안 세상이 많이 바뀌었음을 실감한다.

추억은 예전의 아름다운 모습이 현재에 이르러 좀 더 발전했다는 것을 확인할 때 감동이 더 커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잠실 A매치의 한일전은 경기 안팎으로 아쉬움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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