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한국은 한석봉의 후예로 8세 때부터 붓글씨를 배워 호남의 각종 서예대회를 휩쓴 서예 신동이었다. ‘한국이란 이름 때문에 동무들의 놀림과 선생님의 지나친 기대로 수많은 고초를 겪었지만, 한한국은 서예가 아닌 서도를 배우면서 성숙해 갔다.

청소년 자살이 많은 요즘 그들을 바른 길로 이끌어 줄 멘토가 있어야 한다. 김연아, 박태환, 양학선 같은 세계적 선수는 조기교육의 산물이다. 그들 뒤에는 가족의 헌신과 본인의 피땀 어린 자기주도적 노력이 있었다.

한한국의 탄생으로 53녀의 자식풍년이 든 그의 집은 가난의 무게가 더해졌다. 그런데도 그의 어머니는 한한국이 여덟 살 되었을 때 동네 훈장님 댁으로 달려가 간절히 부탁을 드렸다.

훈장님, 저희 한국이 좀 가르쳐 주시면 참말로 고맙겠어라우.”

그러자 훈장님이 기막혀 하면서 냉정하게 대답했다.

동산(동산에서 시집왔다고 해서 붙여진 어머니 호칭) 아짐, 내더러 한국이 독선생 노릇을 하란 말이시오? 그건 못할거구만잉!”

그럼 어찌하면 우리 애를 가르쳐 주신당가요?”

그야 나락 6가마라면 독선생이라도 되지라우.”

? 그걸 어찌하라고잉? 휴우~!”

어머니는 크게 낙담하여 한숨만 내쉬셨다. 여러 식구에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나락 6가마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잠깐 생각에 잠겨 있던 훈장님이 다시 말을 꺼냈다.

그게 안 되면 대신 여기 와서 배울 학동을 한 20명쯤 아짐이 모아오시려우?”

애들을 모집해 오라고잉?”

어머니는 그날부터 동네방네 다니면서 훈장님한테 한학을 배울 학동을 모집했는데 다른 동네까지 누벼서야 간신이 인원수를 채울 수 있었다. 마침내 한한국도 훈장님한테 한학을 배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때 바로 위의 작은형도 함께 한학을 배우러 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어린 나이인 한한국에게는 한학이 너무 어려워 별로 배우고 싶지가 않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낮에는 학교에 가야 하고 저녁을 먹고 다시 서당에 가면 밤 11시에나 돌아와야 하니 너무 힘이 들었던 것이다.

하늘 천 따 지! 가마솥에 누룽지! 박박 긁어서 너랑 나랑 먹을래?”

아이들은 천자문을 배우면서도 킥킥거리며 이런 우스갯소리로 한학의 고달픔을 달래기도 했다.

이놈들아, 한학은 무조건 외우고 쓰는 게 비결이니께 내일까지 100자를 외우고 100번씩 써오니라!”

호랑이처럼 엄하신 훈장님은 갓을 쓰고 책상다리를 꼬고 앉아 한 발이나 되는 담뱃대를 휘두르며 학동들을 다스렸기 때문에 서당 안에선 모두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학교는 학교대로 한글을 배우는 게 계속 알쏭달쏭해서 지지부진했지만 천자문은 배운 지 얼마 안 돼 좔좔 외워졌다. 특히 한한국은 누구보다도 외우는 것만큼은 뛰어났다.

허허, 한국이 형제는 어째 한 어머니 뱃속에서 나왔는디 그렇냐? 동생 한국인 천자문을 몇 번 읽고도 장타령 하듯 잘도 외우는디 한국이 형은 우째 몇 자 못 나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능겨?”

하지만 형은 붓글씨를 한국보다 잘 썼다. 외우는 것은 단연 한국이 으뜸이고 붓글씨는 형이 으뜸이라 본의 아니게 형제가 라이벌이 되었다. 이때 처음으로 서당 시험이 있었다. 그 내용은 첫째 외우기였고 둘째는 쓰기(붓글씨)이며 셋째는 품행점수로, 세 가지를 합산해 등수가 매겨졌다. 다른 서당의 훈장님들도 와서 함께 시험을 관리했다.

역시 형만 한 아우가 없다더니 한국이 형이 1등이로구나.”

먼저 1등을 한 건 형이었는데 역시 붓글씨에서 1등이 갈렸다.

보소! 동생인 쟤가 더 인물이야. 형은 얼마 못 가. 동생이 크게 될 인물이라니까!”

다른 동네에서 온 훈장이 한한국의 훈장님께 귀엣말로 속삭였다. 그 소리를 들은 한국의 얼굴이 붉어졌다.

왜 저러시지? 날더러 낫다니? 형이 글씨를 휙휙 날아가게 잘 쓴다면 나는 억지로 그리고 있는 것인데…….’

한편으론 기쁘고 한편으론 1등을 놓쳐 분한 마음도 들어 한국은 더욱 열심히 붓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음 번 시험에서는 한국이 1등을 차지했다.

한한국이은집 공저

▲ ●작품명: DOKDO KOREA ●제작년도: 2005~2009년 ●작품크기: 가로 2m 50㎝× 높이 6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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