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한국의 아버지는 가난한 농사꾼이었으나 언제부턴가 떠돌이 장사꾼이 되어 있었다. 젊어서는 오뉴월 뙤약볕에 땀을 바가지로 흘리며 논밭에서 김매는 것을 팔자로 알았으나, 어느 날 돌연히 호미자루를 내던지며 선언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이놈은 역마살이 낀 모양이지라우? 더 이상 요꼴로는 못 살겄네잉!”

그때부터 아버지는 화순장을 돌며 소장수를 시작했다. 송아지 두어 마리를 시작으로 점점 소 식구를 늘려 마릿수를 불리더니, 거의 열 마리나 되는 소떼를 몰고 인근 5일장을 구름에 달 가듯이 떠돌아다녔다.

바람 따라 황소야 가자꾸나! 구름 따라 송아지야 걷자꾸나! 돈을 벌어 부모님 봉양하고 장을 보아 처자식 먹여 살리네! 에헤라! 이만하면 대장부의 살림살이가 부러울 게 무엇이뇨!”

실제 이런 타령이 있는지는 몰라도 아버지는 소를 앞뒤로 끌고 논틀밭틀 고갯길을 걸으면서 구성진 목소리로 소리를 내뽑았다.

하이고, 광섭 아버진 천상 쇠장수루 태어났지라잉! 소떼 타령도 들을 만하네잉!”

그 후 아버지는 남도 최고의 명고수답게 북을 잘 쳤고 어머니는 장구를 잘 쳐서 화답하기도 했는데, 어머니도 아버지 못지않게 예능의 기질을 타고났던 것이다.

광섭이 아부지, 갑자기 쇠장수를 때려치운 건 뭣 땀시라요?”

소장수로 그럭저럭 돈을 벌던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북치는 고수를 하겠다고 나섰을 때 어머니가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아따, 예펜네가 뭘 그딴 걸 알라 하나잉? 사내가 한다면 구경이나 할 것이지잉? 이제 광주에서 최고의 명고수 스승을 모셔다가 숙식을 제공하며 북을 배울 것잉께 그리 아소잉?”

아버지의 말은 그대로 법이 되었기에 어머니는 아무런 토를 달지 못했다. 며칠 후부터 사랑방에선 북치는 소리가 아침부터 밤중까지 끊이질 않았다.

, 북에는 풍장을 칠 때의 풍물 북과 명창의 장단을 맞추는 소리 북이 있다네! 그렁께 이 북은 북 등짝에 쐐기를 박지 않은 소리 북이오. 북은 북 가죽과 채가 잘 맞아야 소리가 좋은데 박달나무 채라야 제격이지!”

과연 북 선생은 단순히 북을 치는 것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이론에도 빠삭했다. 북은 오른발 무릎 앞에 비스듬히 올려놓고 치는데 채를 잡아 둥! 하고 치는 한소리와 두둥! 하고 치는 겹소리가 있으며, 북 가장자리를 쳐서 따닥! 소리가 나게 하는 보조 소리도 있다. 이때 왼손바닥은 북의 좌측면 가죽을 밀어서 울림이나 떨림을 조절하는 것이다. 북 선생의 강습은 거의 1년 가까이나 계속되어서야 끝이 났다. 하지만 아버지는 혼자서 연습할 때에도 변함없이 북에 미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북을 치고 또 쳤다.

광섭 아부지, 자나 깨나 북소리에 귀가 왱왱거려 어디 살겄다요?”

그만큼 어머니의 푸념도 끝이 없었지만 아버지는 들은 척도 않고, 북을 껴안고 자기도 하고 북을 둘러메고 다니며 실성한 듯 웃기도 하고 심지어는 북춤까지 춰대는 것이었다.

한한국이은집 공저

▲ ●작품명: 天光 ●제작년도: 2010년 ●작품크기: 가로 1m80㎝×세로 1m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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