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40여 년 전 그때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지난주 토요일 가족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큰 아들이 “내일 새벽 열리는 바이에른 뮌헨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친구와 함께 TV 생중계로 보기로 했다”고 공식적으로 외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회사원인 큰 아들은 대학생인 막내아들과 함께 열렬한 스포츠 매니아다. 스포츠를 보는 것뿐 아니라 직접 하는 것도 아주 즐긴다. 주말이면 분당 탄천변 고수부지에서 농구나 풋살을 자주 하고 프로야구, 프로농구 경기장도 직접 가서 보는 일도 잦다. 특히 오랜 학교 친구들과 주말 맥주를 마시며 유럽축구를 즐기기도 하니 올해 세계축구의 최대 빅매치의 하나로 꼽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그냥 지나칠 리가 있었겠는가 말이다.

이번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서 바이에른 뮌헨과 보르시아 도르트문트 두 독일팀이 맞붙었던 만큼 ‘독일 축구의 르네상스가 다시 돌아왔다’ ‘독일 축구의 지배 시대가 열렸다’라는 전문가들의 평가가 잇달았다. 아직은 프로축구 시장의 규모와 인기도면에서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와 스페인 프로축구 등에 비해 많이 뒤지지만 이번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통해 분데리스가가 유럽 축구 정점으로 도약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보르시아 도르트문트를 2-1로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한 바이에른 뮌헨은 준결승전에서 세계최고의 스타 리오넬 메시가 이끄는 바르셀로나를 1, 2차전 합계 7-0으로 완파해 명실상부한 세계최고의 팀으로 자리 잡았다.

분데리스가 팀들은 전통적인 힘의 축구를 구사하는 독일 스타일에 상대를 압박하는 강력한 수비와 정밀한 패스능력까지 갖춰 스페인, 잉글랜드 팀들보다 안정된 전력을 과시했다. 그동안 잉글랜드, 스페인 팀끼리 결승서 경기하는 모습을 보아왔으나 앞으로 독일 팀끼리의 대결도 자주 볼 것으로 예상한다. 

졸린 눈을 비비고 새벽녘에 일어나 막내아들과 거실에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보면서 분데스리가 경기에 빠졌던 오래전의 일이 떠올랐다. 40년 전 분데스리가는 세계최고의 리그였다.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축구의 명장 베컨바우워가 이끄는 독일팀은 무적의 팀이었다. 월드컵 결승에서 현란한 기술을 자랑하던 요한 크루이프의 네덜란드를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하던 독일의 인기는 분데리스가를 통해서도 잘 나타났다. 당시 분데리스가는 MBC TV를 통해 국내에도 녹화중계로 방영돼 국내 축구붐 조성에도 크게 기여했다. 당시 힘든 국내 경제상황으로 웬만한 집에서도 TV가 귀하던 때라 만화방에서 분데리스가를 보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오른다.

분데리스가에 대한 관심은 차범근이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을 마치고 한국선수로는 처음으로 독일행 비행기에 오름으로써 더욱 높아졌다. 차범근은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에서 1989년까지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 308경기에 출전해 98골을 기록, 분데리스가 출신 외국인 최다 출전 및 최다 득점을 올리며 ‘차붐’이라는 애칭으로 불리었다.

군대 축구를 ‘군대스리가’라고 부를 정도로 분데스리가의 인기는 1970~80년대 대단했다. 한국 프로축구가 1983년 출범하게 된 것도 분데리스가가 가져온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5공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은 육사시절 축구 골키퍼를 한 바 있어 축구에 대한 애정이 많았으며 여러 시국사건으로 분열된 국론을 축구로 모으기 위해 분데리스가를 모델로 한 프로축구 리그를 창설하게 됐던 것이다.

독일 분데스리가가 화려한 부활에 성공하며 손흥민(함부르크)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 지동원(아우크스부르크) 등 한국출신 분데리스거들에게도 관심이 쏠린다. 이들이 ‘차붐’에 못지않은 인기와 성적을 올려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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