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여배우 복서 이시영의 국가대표 선발을 둘러싸고 두 가지 측면의 관점이 있다. 국가대표로서 충분한 실력이 있다는 주장과 복싱 흥행을 위해 무리하게 선발했다는 비난이다. 논란을 부채질 한 것은 언론이었다. 동아일보는 25일자 <패자 김다솜 “KO로 못 이긴 제 잘못이죠”>라는 기자의 칼럼에서 “누가 봐도 김다솜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던 경기인데 심판이 이시영의 손을 들어줬습니다”라며 판정의혹을 제기했다. 같은 날 신문과 방송 대부분이 이시영의 승리에 찬사를 보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동아일보의 문제 제기는 곧바로 확산됐다. 동아일보는 프로복싱 세계챔피언을 역임한 홍수환 씨의 ‘관전평’을 게재하며 홍 씨의 말을 빌려 “누가 봐도 이시영이가 진 경기”라며 ‘편파판정’으로 몰고 갔다. 동아일보 기사는 인터넷으로 옮겨 붙었다.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가 ‘이시영의 국가대표 타이틀 반납’을 요구하고 나섰고, SNS상에서 대한아마복싱 연맹을 비난하는 내용이 빠르게 확산됐다.
이시영의 판정시비는 이시영의 소속팀인 인천시청으로까지 비화됐다. 내년 인천아시안게임을 준비중인 인천시가 홍보효과를 위해 이시영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며 국가대표 만들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들이 객관성을 확보하기는 어렵지만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킨 것만은 확실하다.
나는 판정의혹에 대한 주장보다는 연예인과 복서라는 쉽지 않은 길을 걸으면서 마침내 국가대표가 된 이시영의 도전정신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여자복싱은 아무나 선택하기 어려운 종목이다. 주먹을 주고받으며 눈에 멍이 들고, 코피가 나고 입술이 불어터지기 일쑤인 복싱은 여성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정상적인 여자도 뛰어들기 어려운 복싱에 여배우 이시영이 선수가 됐다는 것 자체만 해도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이시영은 3년 전 드라마 단막극에서 자신이 맡은 복서의 역할을 리얼하게 표현하기 위해 복싱을 시작했지만 복싱만의 매력을 느껴 선수로 본격 나서게 됐으며, 전국아마추어 복싱대회 우승을 거쳐 마침내 국가대표로 선발되게 됐다.
그의 복싱 실력이 대단히 뛰어난 것은 아니다. 이시영이 이번에 국가대표로 선발된 최경량급인 48㎏급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종목 체급이 아니어서 경쟁이 별로 없는 종목인데다 선수들의 기량도 다른 체급에 비해 많이 처진다는 평가이다. 하지만 여자 복싱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시영 같은 선수의 도전정신을 높이 평가해 줘야 한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첫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여자복싱은 미국 등 선진국 등에서도 별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등록선수는 거의 손꼽을 정도로 얼마 되지 않는 비인기 종목이다. 이런 열악한 현실 속에서 이시영의 존재감은 여자 복싱의 희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이시영은 연예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경쟁력인 예쁜 얼굴이 망가지는 부담을 안고서도 묵묵히 선수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 자체가 여자복싱의 밝은 미래를 제시해주고 있다.
미국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복싱에 인생의 전부를 건 열정적인 여자가 복싱을 통해 힘과 용기를 얻으며 새로운 차원의 삶을 살아나가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복싱 국가대표가 된 이시영의 성공스토리가 주위로부터 흠집이 생기고 깊은 상처를 받는다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많다. 가뜩이나 선수부족에 허덕이는 여자 복싱을 하려는 여성들이 외면을 하게 될 것이며 복싱은 좀처럼 비인기 종목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시영은 이번에 벌어진 판정시비에 너무 위축되지 말아야 한다. 일단 복싱 선수로 나선 만큼 자신의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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