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한국인 최초의 LPGA 투어 우승자를 박세리로 잘못 알고 있을 것이다. 이는 박세리로부터 한국여자골프가 본격적인 세계화를 이뤘던 데서 오는 착각이 아닐까싶다. 골프를 좀 아는 이라면 첫 LPGA 우승자는 박세리가 아닌 구옥희라는 사실을 얘기한다.

구옥희가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벌어진 스탠더드레지스터클래식 정상에 오른 것은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봄이었다. 구옥희의 우승은 서울올림픽 이슈에 가려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한국여자골프에는 뜻 깊은 의미를 지녔다. 이를 계기로 한국여자골프에 새 바람이 불고, 골퍼가 되겠다는 사람이 늘어나며 골프의 대중화에 불이 붙었기 때문이다.

1일 2013 US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해, 세계여자골프에서 63년 만에 메이저대회 3회 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박인비가 세상에 태어난 해는 공교롭게도 구옥희가 첫 LPGA 우승을 했던 1988년 7월이었다. 한국여자골프가 LPGA와 첫 인연을 맺은 해에 ‘서울올림픽 둥이’로 태어난 박인비가 골퍼가 된 것은 어쩌면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비록 구옥희가 LPGA서 우승을 차지했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여자골프는 선수 부족과 인프라 미비 등 열악한 조건으로 세계무대에 명함을 내놓기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박세리가 1990년대 후반 미국 무대로 진출하면서 한국여자골프는 더 이상 골프의 변방이 아니었다. IMF 시절 박세리가 맨발의 투혼을 불사르며 US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한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안겨주면서 한국여자골프는 더욱 강한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박세리의 우승을 보면서 자신감을 가진 박세리 키드들이 본격적으로 골프에 입문했다. 박인비도 박세리를 롤모델로 삼아 아버지의 권유로 골프를 시작하게 됐다.

박세리의 전성기를 거치면서 많은 유망주들이 탄생했다. 김미현, 장정, 박지은 등이 박세리와 함께 미국여자골프에서 정상을 차지하며 새로운 강자로 등장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박세리 키드들이 세계 골퍼 정상급 대열에 속속 합류했다. 2008년 박인비가 US오픈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면서 주목을 받았으며 최나연, 신지애, 유소연 등이 잇달아 LPGA 우승을 차지했다.

2013년은 한국여자골프가 최고의 방점을 찍은 해로 기록됐다. 올 시즌 초부터 강세를 보이기 시작한 박인비가 크라프트 나이스코 챔피언십과 웨그먼스 LPGA 챔피언십에 이어 US오픈 타이틀까지 거머쥐며 1950년 베이브 자하리아스(미국)가 세운 시즌 개막 후 메이저 대회 3연승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올 시즌 6승을 챙긴 박인비는 2001년과 2002년 박세리가 세운 한국 선수 시즌 최다승 기록(5승)도 갈아치웠다. 롤모델 박세리의 최고 기록도 뛰어 넘어서며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선수로 올라선 것이다.

한국 선수로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랭킹 1위가 된 것은 박인비가 처음이다. 박세리, 신지애 등은 여러 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으나 아니카 소렌스탐, 로레나 오초아 등에 밀려 세계골프 1인자로 평가받지 못했다.

따라서 한국여자골프에게 박인비 이전과 이후는 여러모로 의미를 둘 만하다. 박인비가 사상 초유의 대기록을 세우며 세계랭킹 1위를 확고히 지키게 됨으로써 한국여자골프는 한국여자양궁과 함께 한국스포츠를 대표하는 종목으로 자리 잡았다. 1988년 구옥희가 첫 LPGA 우승이후 25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이 뛰어난 한국스포츠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박인비의 나이와 함께하면서 말이다.

‘국내 1위가 세계 1위’라는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여자골프는 앞으로 한국 선수들끼리의 경쟁이 더욱 뜨거워지리라 본다. 2013 US오픈에서 리더보드에 박인비, 김연경, 유소연이 나란히 1~3위를 독차지한 것을 보면 한국여자골프의 미래가 창창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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