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미국 대학농구에서 UCLA 감독을 맡아 12년 동안 88연승이라는 기록과 함께 전미대학 농구선수권대회(NCAA)에서 10차례 우승을 차지한 존 우든 감독은 생전에 “공부하는 조직이 성공한다. 배우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 퍼듀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던 우든 감독은 고교 영어교사를 하기도 했으나 체계적인 농구 지도자 코스를 거쳐 ESPN에 의해 미국인이 꼽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선정됐다. 존 우든의 ‘부드러운 것보다 강한 것은 없다’ ‘리더라면 존 우든처럼’ 등 다수의 책을 함께 만든 존 우든의 죽마고우 스티브 제이미슨은 “존 우든이 비즈니스계에 몸을 담고 있었다면 마치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처럼 성공했을 것”이라며 “농구는 농구공 이상의 것이고, 존 우든은 농구 감독 이상의 리더였다”고 설명했다.

과연 우리나라 농구에서는 3년 전 99세의 일기로 타계한 존 우든 감독같은 훌륭한 지도자가 나올 수는 없는 것일까. 답은 불가능하다이다. 농구인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현재와 같은 지도자 시스템으로서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지도자 교육시스템이 없고, 선수 시절 훌륭한 지도자 교육을 받을 기회도 없기 때문이다.

남자프로농구가 출범한 지 17년이 됐고, 여자프로농구도 15년이 된 우리나라 농구는 아시아권에서 남녀프로농구가 존재하는 유일한 나라이지만 세계는 물론 아시아에서도 변방 농구로 밀려났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지만 능력있는 지도자가 없다는 점을 우선 지적할 수 있다.

우리나라 농구계는 자격증이나 전문교육을 받지 않고 누구나 감독이나 코치를 할 수 있다. 축구, 야구, 배구 등은 지도자 자격증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유독 농구는 지도자 자격증 시스템이 없다. 따라서 아무나 농구지도자를 맡을 수 있고, 언제든 지도자들을 쉽게 해고할 수도 있다.

이는 날로 전문화, 체계화돼가는 국제농구와도 크게 비교된다. 이미 세계아시아농구연맹(FIBA ASIA)은 각국의 코칭개발 프로그램을 1급, 2급, 3급으로 구분, 적극적인 교육을 실시하며 동아시아연맹(EABA)에게 교육의 수행여부를 정기적으로 보고할 것을 요청했으나 우리나라는 전혀 이에 대한 준비가 없는 상태이다.

농구지도자는 사실 전문직이다. 교사, 회계사, 판검사, 의사, 부동산 중개사 등 전문직과 같이 농구라는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가이다. 농구에 대한 전략과 전술, 지도력, 교육, 리더십 등까지 갖춰야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농구는 농구지도자를 위한 전문 자격증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아 전문성이 있어도 인정을 받지 못하며, 또 전문성을 키울 기회도 없었다. 경험이 많은 지도자들은 스스로의 문제의식과 해결능력으로 팀을 이끌었으며, 경험이 부족하거나 미숙한 지도자들은 ‘어깨너머 공부’ 등으로 여러 코칭 기술과 팀 관리 등을 배워 나갔다. 공부를 하고 싶어도 공부를 할 수 없는 기형적인 구조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 우리나라 농구의 현주소이다.

대한농구협회가 이러한 구조적인 농구지도자 양성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효율적인 지도자 시스템 구축에 나선 것은 뒤늦게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협회는 지도자 자격 및 교육을 제도화하기 위해 17일 한체대에서 ‘감독․코치 자격․교육 규정 제정 공청회’를 열었다. 이날 공청회는 초·중·고 및 대학, 실업연맹 집행부 임원과 전·현직 지도자, 원로 농구인이 참석한 가운데 방열 협회장이 주제발표를 맡았고, 김승기 인헌고 교사와 최대혁 서강대 교수가 발제자로서 발표를 했다.

국가대표 출신으로 현대와 기아 감독, 국가대표 감독을 거쳐 박사학위를 받아 대학교수와 대학총장까지 지낸 방열 협회장을 비롯한 뜻있는 많은 농구 관계자들이 그동안 숙제였던 농구지도자 시스템의 확립을 통해 우리나라 농구계에도 존 우든 감독같은 세계적인 명지도자가 배출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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