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웅전 뒤에 있는 보타사마애보살좌상(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89호)이다. 살짝 휘어진 바위의 곡선을 그대로 살려 조각해 보살상이 부드럽게 표현됐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태조 이성계가 조선 건국위해 기도했던 절
개운사와 대원암 뒤에 숨겨진 비원 같은 곳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뎅. 뎅. 뎅.’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風磬)소리가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여느 사찰에도 있는 풍경이지만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함께 산속에 울려 퍼져더욱 매력적이다. 보타사는 그런 곳이다.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이 사찰은 고향에 온 듯 항상 그 모습 그대로다.

사찰이 언제 건립됐는지, 누가 있었는지, 보타사는 정확한 연혁을 알 수 없다. 그저 낡은 건물을 보아 사찰의 나이를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또 태조 이성계가 조선 건국을 앞두고 전국 8대 명산을 돌아다니며 하늘에 기도를 드렸던 곳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것을 보아 고려 말인 1390년대에도 사찰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佛선각자 석전스님이 주석했던 대원암

▲ 보타사 일주문 옆에 있는 풍경(風磬)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소리가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개운사 주위로 조계종 포교사 대학원과 포교사단, 보육교사교육원 등 불교 시설이 즐비하다. 그중 하나인 개운사(開雲寺)의 암자 보타사는 서울시 성북구 안암동 개운사에서 1㎞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개운사에서 오른쪽으로 난 골목길의 ‘보타사’라고 적힌 이정표를 따라 굽이굽이 골목을 걷다 보면 마당 한가운데 큰 나무가 있는 보타사 입구가 나온다. 큰 나무 밑에 ‘대한불교 조계종 보타사’라고 적힌 현판을 못보고 지나치면 자칫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을 정도로 소박하다. 보타사를 가려면 필히 대원암을 거쳐야 한다. 들어가는 입구를 지나 오른편에 대원암이 있기 때문이다.

개운사의 또 다른 암자인 대원암은 사찰의 건물이라기보다 1900년대 초에 건설한 일반 한옥 같다. 일반인들에겐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불자들 사이에선 대원암은 근대불교역사의 현장으로 유명하다. 한국 근대 불교의 태두이자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지식인이라 평가받는 석전스님이 주석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석전스님은 일제의 식민지 불교정책에 맞서 싸운 불교 운동가로 교육을 통해 인재를 양성해야만 한국불교의 미래가 보장될 수 있다고 생각한 선각자다. 생전에 그는 불교교육에 심혈을 기울여 대원암에 불교전문강원을 개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스님의 수많은 제자 중 한 사람인 문화운동가이자 작가, 사학자인 육당 최남선은 석전스님의 한시를 모은 ‘석전시초(石顚詩抄)’에서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석전사(師)를 만나매, 내전이고 외전이고 도대체 모르는 것이 없을 만큼 박식했다. 나는 누구에게도 물어볼 것이 없는데, 석전선생에게는 물어볼 것이 있다.”

현재는 조계종 어산작법학교가 염불을 가르치는 곳으로 사용하고 있다.

◆암벽에 조각된 거대한 마애보살좌상
대원암을 뒤로하고 보타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보타사를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대원암을 지나도 가는 길이 눈에 확 띄지 않았다. 찾고자하지 않았으면 못 찾고 발길을 돌릴 뻔했다. 주차장 끝쪽에 긴 계단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곳이 입구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보타사는 개운사와 대원암 뒤에 숨겨진 비원(祕n苑) 같은 곳이다. 세월은 가지만 이 사찰의 시간은 멈춰 있는 것 같다. 작은 대웅전도, 요사채도, 닳은 손잡이도 그 모습 그대로다. 그만큼 여유롭다.

사찰 내에서 가장 큰 건물인 대웅전은 좀 특별하다. 불상 뒤 벽 부분이 유리로 돼 있어 뒤에 있는 보타사마애보살좌상(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89호)과 풍경이 한 폭의 그림 같다. 대웅전 뒤에는 화강암 암벽에 조각된 마애불상이 있다. 옆에서 바라보면 살짝 휘어진 바위의 곡선을 그대로 살려 조각해 보살상이 부드럽게 표현됐다는 것을 있다. 암벽에서 자라나는 소나무도 그대로다.

▲ 보타사 대웅전 모습(왼쪽). 대웅전 내부의 모습(오른쪽). 불상 뒤 벽 부분이 유리로 돼 있어 뒤에 있는 보타사마애보살좌상과 풍경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이 불상은 1992년 서울문화사학회가 정기 답사 때 발굴한 것으로 높이 5m, 폭 4.3m의 거대한 보살상이다. 머리에 보관을 쓰고 있는 형태의 토실토실한 불상의 얼굴은 비교적 풍부한 표정을 하고 있다. 깊은 눈매를 보니 이 보살좌상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머리에는 좌우 옆으로 뿔이 있는 관을 쓰고 있다.

사실 뿔끝에 복잡한 타원형의 장식이 있어 이게 귀인지 장식인지 헷갈린다. 목에는 목걸이, 손에는 팔찌를 하고 있는 마애보살좌상은 멋쟁이다. 오른손은 어깨높이로 올려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있다. 좌상 머리 양쪽에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다. 이는 보살좌상을 조성할 당시 별도의 전각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보살좌상의 왼손 바로 옆에는 원패가 있다. 원패는 부처나 보살의 이름을 적어 불단 위에 놓는 목제 장식물인데 보타사는 마애불상 옆에 새겨놓았다. 원패에는 ‘나무금강회상불보살(가운데), 도리회상성현중(오른쪽), 옹호회상영기등중(왼쪽)’이라고 새겨져 있다.

몸은 하얀색, 입술은 붉은색, 눈과 눈썹, 윤곽은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다. 이렇게 하얀 불상을 백불(白佛)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고려 후기 경기도 지역에서 유행했던 양식이다. 또 선각의 옷 주름이 기하학적으로 표현된 것 등이 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까지 유행했던 불상들의 특징이어서 이 시대 조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