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림선원으로 들어서면 화림원(요사채)와 수각(우물), 대웅전, 별채 순으로 이어진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경내 돌 틈에서 흐르는 샘물이 ‘다친 뼈에 좋다’ 해서 유명
현재 5층 석탑과 새로 지은 대웅전·별채·수각만 그 자리에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안 산다, 안 산다” 하면서 산다는 경기도 안산지역에는 몇 차례에 걸친 도시 개발로 반월공단과 인근의 시화공단이 들어섰다. 이와 함께 인구가 증가하면서 일반 주택이나 건물 내에 설립되는 사찰이 많이 생겨났다.

조계종과 천태종, 법상종, 태고종 등 여러 사찰 중 대표적으로 큰 두 사찰이 있는데 한 곳은 대부도의 쌍계사, 다른 한 곳은 ‘화림선원(華林禪院)’이다. 그중 안산시 상록구 일동 산111번지에 있는 화림선원을 찾았다.

◆계향산 산기슭에 아늑하게 자리 잡아
서울에서 한 시간을 달려 안산에 도착했다. 지하철 4호선 중앙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호동초등학교 정류장에서 내렸다. 주택 단지를 이리저리 지나면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화림선원 입구가 나온다.

▲ 화림선원 5층 석탑. ⓒ천지일보(뉴스천지)
경기도 전통사찰 제81호로 지정된 이 사찰은 수리산에서 쭉 이어져 있는 산봉우리인 은룡산(隱龍山) 또는 계향산(桂香山)으로 불리는 산의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도심 속에 있는 사찰이지만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어 절기나 행사 때마다 많은 신도가 찾고 있다.

화림선원이라는 간판이 붙은 입구는 우거진 나무 덕분에 사찰 내부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궁금증을 자아낸다. 또 꽃이 피는 계절이 오면 이 길은 각양각색의 꽃들이 만개해 그 모습 또한 장관이라고 전해진다.

평일이라 그런지 신도가 많이 없었다. 입구로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주차장에는 차 2대만 덩그러니 주차돼 있다. 주차장 한쪽에는 대웅전의 기둥으로 쓰였던 것으로 보이는 벤치가 있다. 벤치에 새겨진 단청이 낡아 벗겨진 점이 정감이 간다.

주차장 다른 한쪽에는 동자승 조각들이 장식된 5층 석탑이 늠름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와 바람, 눈을 견뎌낸 석탑은 닳은 자신의 모습으로 나이를 말해주고 있다. 아래 핀 꽃과 잔디가 사이좋은 형제처럼 석탑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약수로 유명해져 많은 사람이 찾아
주차장에서 나와 대웅전으로 향했다. 경내로 들어서면 화림원(요사채)와 수각(우물), 대웅전, 별채 순으로 이어진다. 화림원(華林院)은 이름에서도 보여주듯 꽃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고개 숙인 할미꽃과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빨간 해당화 등은 삭막한 사찰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화림선원은 특이하게도 우물에 수각을 지어 보호했다. 인근 산에서 나는 산골(한방에서 자연동(自然銅)을 약재로 이르는 말)과 경내 돌 틈에서 흐르는 샘물이 다친 뼈에 좋다 해서 유명해져 과거에는 많은 사람들이 물을 뜨러 사찰을 찾았다.

기자가 우물을 찾았을 때는 한동안 사람의 손을 안 탄 것인지 많은 장독대 사이에 있는 우물 뚜껑 위로 짐이 올라가 있었다. 화려한 수각만이 이곳이 예전에 유명했던 우물이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 대웅전 안에는 가운데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양쪽에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이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외관이 그리 화려하지 않은 대웅전으로 들어서니 안은 더위가 싹 가실 만큼 시원하다. 대웅전 안에는 신자 서너 명이 더운 날씨에도 기도하고 있다. 방석을 내주며 “여자는 차가운 데 앉는 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한 신자가 옆집 아주머니처럼 친근하게 느껴진다.

대웅전 안에는 가운데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양쪽에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이 있다. 용을 깔고 앉은 삼존불은 뒤에 있는 금 불화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그위로 학과 봉황이 어우러진 천장 단청이 눈길을 끌었다. 용을 강조해 장식한 다른 사찰과 다르게 학과 봉황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과 6.25 전쟁 등으로 원래의 건물은 모두 없어지고 150년 된 삼성각만 남아 있었는데 이 삼성각은 건축법이 특이해 건축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삼성각은 자리에 없고 컨테이너와 화로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 학과 봉황이 어우러진 천장 단청이 눈길을 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장래 미륵불이 출현하는 곳’
고려 시대 창건된 것으로 알려진 화림선원은 원래 ‘고지도(古地圖)’에 표시된 것처럼 ‘첨성’이라 했으나 이후 ‘점성’으로 변하여 ‘점성(占星)의 약수암(藥水庵)’이라 불렸다. 이 절은 중국으로 오가던 사신들이 머물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또 원래 탑이 많아 ‘탑골’이라고도 불렸는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이곳의 탑들을 수탈, 가져갔다고 한다.

본래 사찰은 소실되고 1972년 용성스님이 온갖 어려움 끝에 대웅전을 다시 세우면서 ‘장래 미륵불이 출현하는 곳’이라는 의미로 이름을 ‘화림선원’으로 바꿨다. 당시 승주 송광사를 지은 조희환 도편수가 우리나라 전통 모형을 그대로 재현한 전통 예술품으로 지었다. 이후 1989년 대웅전을 헐어 그 재목으로 대웅전을 다시 짓기 시작해 1995년 9월 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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