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동교회의 옛 모습, 당시에는 제물포성당이라고 불렸다(왼쪽-한국교회사학회 홈페이지). 인천 중구 내동에 있는 내동교회. ⓒ천지일보(뉴스천지)

(※ 약대인: 藥大人, 서양의사)

코프 주교, 랜디스 박사 1980년 입항
병원·학교 설립하며 의료·교육 선교
랜디스, 과로에 장피푸스 걸려 숨져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조선 땅을 밟은 노란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약대인(藥大人)이 있었다. 그는 조선을 자기 목숨보다 사랑했던 내과의사 엘리바 랜디스(Elibarr Landis) 박사다. 랜디스 박사는 종군신부였던 존 코프(Charles John Corfe, 한국이름 고요한) 주교와 함께 1890년 9월 인천항에 도착했다.

그 당시 인천은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정치‧사회적으로 격변기를 맞았다. 처음 성공회가 조선에 들어온 것도 바로 이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코프 주교는 1890년 9월 성당을 건축해 본격적인 한국 포교를 시작한다.

다른 종교와 달리 성공회는 그 나라 사정에 맞춘 토착화 선교활동을 했고 교육과 의료 봉사활동에 주력했다. 코프 주교는 서울과 경기도 충청도 지방 등을 돌아다니며 전도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후 인천과 여주, 진천 등지까지 손을 뻗쳐 병원을 설립하고 각지에는 학교를 설립했다.

코프 주교와 함께 들어온 랜디스 박사는 지금의 내동교회 자리에 성 누가병원을 세우고 열성적으로 사람들을 진료했다. 당시 주민들은 이 병원을 ‘약대인병원’이라고 불렀다. 서양 약을 가지고 치료하는 의사를 이르는 말인 ‘약대인’이란 단어에는 젊은 나이의 노란 머리 외국인이 낯선 조선 땅에 들어와 의술을 베풀었던 랜디스 박사에 대한 존경의 의미도 담겨 있다.

랜디스 박사의 활동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병에 대해서 무지했던 사람들에게 양약을 쓰는 의료 활동은 낯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꾸준한 활동으로 인천지역 사람들은 치료의 필요성을 알게 됐다.

이후 랜디스 박사는 한국 사람들을 위해 1891년 현재 중구 내동 3번지에 온돌식으로 꾸민 병원을 세운다. 환자들에게는 의료비를 받지 않았다. 의료비는 선교비 명목으로 코프 주교가 복무했던 영국해군에서 지원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사는 의료선교 외에도 교육에도 힘썼던 것으로 전해진다. 낮에는 의료선교를 저녁에는 영어 학교에서 교육했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매일 일에만 매달린 랜디스 박사는 1989년 3월 과로와 장티푸스에 걸려 병석에 누운지 한 달여 만에 32세란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언덕 위 아름다운 교회

신포동 거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자유공원에는 대한성공회 인천 내동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인천 중구 내동에 있는 이 교회는 주택‧빌라 등 일반 가정집에 둘러싸여 있어 찾기가 쉽지 않았다.

동인천역 2번 출구에서 나와 자유공원을 따라 걷다가 저 멀리 교회의 머리 꽁무니만 보고 골목 이리 저리를 걸어가 보니 마침내 언덕 위에 있는 내동교회와 만날 수 있었다. 천주교 성당보다는 다소 검소하고 소박한 모습이지만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가 그 정취를 더해줬다. 봄에는 봄 나름대로, 여름에는 여름 나름대로 교회와 작은 정원의 조화로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풍겨 나온다.

인천의 대표적인 종교 건물로 답동성당을 떠올리는 기독교인이 많지만 내동교회도 그에 버금가는 문화재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1호인 내동교회는 6.25전쟁 때 일부 파괴됐던 것을 수리해1955년 6월 완공된 것이다.

건물 형태는 지붕의 목조트러스를 제외하고 외벽과 주요부재는 화강암으로 견고하게 쌓아올린 중세풍의 석조다. 또한 한국의 전통적인 목구조 처마양식을 가미해 창호 및 벽체 부분의 처리가 뛰어나다.

한국교회 건축양식으로는 유일하게 바실리카(서양 고대부터 중세에 걸쳐서 발달한 건축) 양식을 따른 건물이기도 하다. 한국 전통미를 살려 처마를 마감했고 창호 및 벽체 부분을 섬세하게 처리했다. 또한 한국 고유의 맞배지붕을 본떠 기와를 얹는 등 동서양 특징을 아름답고 조화롭게 제작했다.

◆연꽃 모양의 십자가… 불교 포용 의미해

교회에 들어서면 왼쪽 작은 화단에 코프 주교와 랜디스 박사의 흉상과 기념비, 영국병원 돌비가 줄지어 있다. 왜소하면서도 인자한 두 흉상의 모습에 한국에 대한 애착이 보였다.

영국병원 돌비는 교회 옆 ‘성 미카엘 종합사회복지관’ 건축 과정 중 땅속에 묻혀 있던 것을 발견한 것이다. 본당에는 양옆으로 두 개의 문이 있다. 내부로 들어서니 벽 위쪽으로 나 있는 창문에서 햇빛이 은은하게 들어왔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목조로 된 천장이다. 반원 모형의 이 천장은 한옥을 연상하게 하는데 가운데 예수상이 달려 있다. 전체적으로 화강암으로 제작된 벽면에는 일반 성당에서 볼 수 있는 스테인드글라스는 볼 수 없었다.

대신 십자가 모형으로 된 작은 개구부가 있는데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그 덕분에 외부의 빛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벽면 전체가 십자가 모형의 조형물이 됐다. 본당 뒤쪽에는 세례대가 있는데 그 위엔 연꽃 모양의 십자가가 있다. 이 십자가는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믿고 있던 불교를 포용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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