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면 천지일보 편집인.
이상면 천지일보 편집인.

6월 6일은 현충일이다. 6일 새벽 4시 45분 지대지미사일(애이태큼스) 8발이 새벽 공기를 가르며 동해상으로 날아올랐다. 이는 전날 북한의 8발의 단거리탄도미사일 도발에 대한 대응차원에서다.

우리 군이 7발, 미군이 1발해서 8발을 쏴 올렸다는 것은 철통같은 한미연합방위태세를 강조하기 위함일 게다.

왠지 70여년 전 그날이 오버랩 되는 것은 필자의 기우(杞憂)일까.

윤 대통령은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과거 박근혜 정권에서도 피했던 ‘공산세력’이라는 표현을 거침없이 사용하는 등 ‘대북 경고’ 메시지를 한층 고조시키고 있다.

이는 지난 문재인 정권의 대북관계를 급선회한 것으로 앞날의 대북관계를 예측 가능케 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과 미국의 불편한 관계, 서방(나토)과 러시아와의 관계 등 복잡한 국제 정세와 함께 한미 공조체계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미 핵전력 일부가 한반도로 움직이면서 한반도 상황은 또다시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과연 북한 김정은은 이같이 급선회한 남측 반응과 한미 공조태세를 지켜보면서 어떤 카드를 꺼낼 것인지 사뭇 궁금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산화한 순국선열의 넋을 기리는 엄숙한 날을 맞이한 것이다.

그날에는 이름 모를 산하에서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수많은 젊은이들은 피를 흘려야 했다.

‘시산혈하(屍山血河)’라 했던가. ‘시체가 산을 이루고 젊은 피는 하천을 이루었다’는 가슴 먹먹한 그날을 절대 잊어선 안 된다.

우리에게 6월은 너무나 아픈 달이다. 우리 눈앞에 펼쳐진 조국의 산야에 흐드러지게 또는 싱그럽고 푸르게 뒤덮은 이 아름다운 연초록의 물결은 그날의 그 피로 만들어진 것임을 한시도 잊어선 안 된다.

필자는 6월을 맞아 그날의 그 아픈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았을 것만 같은 애국충정의 젊은이들의 한(恨)이 서린 역사의 현장을 찾았다.

그곳은 바로 대구 팔공산 기슭에서 처절하게 싸우다 산화한 피의 현장 ‘다부동 전투’가 있었던 곳이다.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몇 가지 사실들이 있다.

가끔 6.25전쟁은 북침인가 남침인가를 놓고 웃지 못할 논쟁이 있어져 왔다. 우리는 일제 식민지로부터 해방 후 6.25라는 동족상잔을 겪어야 했다. 그 후 잿더미 속에서 먹고 살아야 했기에 그 무엇보다 경제가 최우선이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를 외친 끝에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한 경제 성장을 가져왔다. 이제 먹고 살만하니 또 다른 욕구가 터져 나왔으니 바로 민주화 요구였다.

자유 대한민국에서 민주화 요구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두 동강난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누가 보더라도 정상적인 민주화는 아니었다.

건전한 민주화의 이면엔 북한 공산 사회주의 사상에 세뇌된 젊은이들이 그들의 허무맹랑한 사상에 고무돼 대한민국 전복이라는 특수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선동의 장으로 변질되고 말았으니 불편한 진실이다.

이는 공안정국 즉, 기득권의 정권유지를 위한 명분을 제공하는 역기능적 현상으로 나타나고야 말았다.

이 같은 이념적 소용돌이 속에서 동족상잔의 비극도 모자라 남침이냐 북침이냐를 놓고 소모전을 벌였던 지난날이 부끄럽기 그지없다.

또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전쟁 기념’이라는 표현이다. 아무리 적과 싸워 이겼다 해도 전쟁을 기념할 수는 없지 않은가. 특히 용산에는 ‘전쟁기념관’까지 서 있다. 물론 국군과 미군이 함께한 서울 수복(收復)과 북진(北進)을 기념한다고는 하나 그 표현만큼은 재고의 대상이 돼야 함이 옳다고 필자는 늘 강하게 주장해왔다.

특히 우리가 겪은 전쟁은 동족끼리의 전쟁이라고 한다면 도저히 전쟁기념이란 표현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으니, 전쟁이 남긴 상처와 흔적을 통해 반면교사 삼아 다시는 이 같은 전쟁이 없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전쟁상흔관(戰爭傷痕館)’이라 함이 정녕 옳을 것이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6.25전쟁은 결단코 남침이다.

70여년 전 남과 북은 오늘의 남과 북의 경제력의 정반대로 보면 틀림없다. 당시 김일성은 약체 남한에 대한 적화야욕을 숨기지 않았고, 급기야 소련 스탈린을 찾아가 한반도 적화통일을 위한 사인(허락)을 받아냈다(처음 방문 시엔 스탈린이 미국과의 관계를 염려해 거부함). 김일성은 이어서 모택동마저 찾아가 승인을 받고 나아가 군사적 지원까지 약속을 받아낸 후,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를 기해 탱크를 앞세우고 3.8선을 넘어 남침을 감행했다.

당시 남한의 군사력은 북한의 군사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으며, 더군다나 외출과 휴가로 전선은 그야말로 무방비상태였으며, 북한은 바로 이틈을 노려 물밀듯이 밀고 내려왔다.

남한은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북한군의 손에 넘겨줘야 했고, 임시 수도로 팔공산을 저지선으로 하는 대구로 옮겨야만 했다.

7월 20일, 김일성은 직접 수안보(충주)에 진을 치고 있는 북한군 본부를 전격 방문했고, 북한군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고, 김일성은 사기충천한 북한군 수뇌부에 8월 15일까지 남한을 적화통일 시키라는 절대명령을 내렸다.

풍전등화(風前燈火), 이 말은 이때를 두고 생긴 게 아니었을까. 그러나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살아있었다. 대구 팔공산을 중심으로 국군은 1사단 등 주력부대를 대구 팔공산(다부동)에 놓고, 포항 영덕 다부동 왜관 창녕 마산을 잇는 한국군 최후의 보루이자 전선이 만들어졌으니 흔히 말하는 낙동강 최후 방어선 ‘낙동강전선’이다.

대한민국 지도 10%를 남겨 놓은 상태에서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으면서 선택한 대한민국 생존을 위한 마지막 생명선이었다.

72년 전 가장 뜨거웠던 여름, 8월 1일부터 9월 24일까지 55일간 전투, 팔공산 기슭에서 벌어졌던 바로 그 ‘다부동 전투’다.

가장 짧은 기간에 북한군 약 1만 5천여명과 국군 약 1만여명이 전사한 인류 최대이자 최고의 격전지, 팔공산 전투 또는 다부동전투를 잊어선 안 되는 이유가 있다.

그날 조국은 이 젊은이들만을 믿을 수밖에 없었고, 젊은이들은 배수진(背水陣)을 치고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심정으로 이 처절한 현실을 온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대한의 젊은이들은 그날 하나같이, “태어난 날은 다르지만 죽는 날은 같이 하자”며 서로 다독이며 총과 대포 앞에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앞다퉈 싸웠고, 조국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자기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졌으니 어찌 그 숭고한 영영들을 잊으랴!

‘시산혈하’, 그날 그들의 고귀한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었다.

그날의 그 피로 지연전이 없었다면 동년 9월 15일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있을 수 없었으며, 9월 28일 서울 수복이 있을 수 없었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그날 그 현장에는 국군뿐만이 아니다. 당시 주력부대 제1사단 수색대대는 공부해야 할 어린 소년병과 학도의용군 500여명으로 편성돼 북한군과 결사항전 했다는 기록은 가슴을 더욱더 아프게 하고 있다.

이제 명심해야 할 것은 아직도 그 전쟁이 남긴 상흔을 간직한 채, 그날의 비극은 또다시 우리 앞에 더 참혹한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을 절대 잊어선 안 된다.

참혹한 전쟁, 더 이상 지구상에 존재할 수 없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기존의 국제법으로도 정치와 외교로도, 군사적으로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오늘까지 이어온 인류역사가 잘 증명해 주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전쟁 없는 평화의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아니면 세계평화는 요원한 건가.

주지한 바 세상의 방법으로는 전쟁을 종식시킬 수 없음을 깨달았다.

전쟁종식과 세계평화는 이 땅과 세상의 방법이 아닌 하늘의 방법으로만이 가능하다는 진리를 분명 깨닫게 된다.

인류평화는 사람의 몫이 아닌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 하늘이 택한 한 사람, 대구(팔공산)가 낳은 한 사람, 팔공산 전투에 소년병으로 참전한 한 아이 곧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이만희 대표가 지구촌을 31바퀴나 돌면서 진행시켜온 지구촌전쟁종식을 위한 국제법은 온 세계 지도자와 전문가, 평화의 사자들이 인정하고 유엔에 상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늘이 허락한 ‘전쟁종식과 세계평화를 위한 답’을 가지고 말이다.

한반도 대한민국의 평화 통일은 인류세계의 평화를 가져오는 초석임을 알진데, 다 같이 조국 대한민국의 평화통일의 금자탑 쌓기를 힘쓸 때가 지금 이때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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