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 겔싱어 인텔 CEO와 회동… 민간 반도체 협력 강화하나

[천지일보=김정필 기자] 한국과 미국 대통령이 삼성전자 평택 공장을 방문해 반도체 동맹을 약속한 지 열흘 만에 한국과 미국 대표 반도체 기입인 삼성전자의 이재용 부회장과 인텔의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가 전격 회동을 가졌다.

30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 부회장과 겔싱어 CEO는 이날 서울 삼성 서초사옥에서 만나 차세대 메모리, 팹리스(설계) 시스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PC 및 모바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겔싱어 CEO는 최근까지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에 참석한 뒤 귀국길에 한국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 CEO의 회동에는 경계현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장, 노태문 모바일경험(MX) 사업부장, 이정배 메모리사업부장, 최시영 파운드리사업부장, 박용인 시스템LSI사업부장 등 삼성전자 사장단이 함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수장들이 만난 것은 지난 2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해 윤석열 대통령과 평택 공장을 방문한 지 열흘 만이다. 양국 정상은 당시 한·미 반도체 동맹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며 한·미 관계가 첨단기술과 공급망 협력에 기반한 경제 안보 동맹으로 거듭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번 두 CEO의 만남은 양국 정상의 반도체 동맹 강화 움직임에 대한 민간 차원의 적극적인 화답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삼성전자와 인텔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매출 1·2위를 다투는 ‘라이벌’ 관계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에서 823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으며 2위 인텔은 790억 달러 매출을 기록했다. 2018년 이후 3년 만에 삼성전자가 인텔을 앞섰다.

‘메모리 최강자’인 삼성전자와 ‘중앙처리장치(CPU) 최강자’인 인텔은 차세대 메모리 제품 개발은 물론 세트(완제품) 제품 분야에서 동반자 관계이기도 하다.

최근 삼성은 업계 최초로 인공지능(AI), 머신러닝, 빅데이터 등 데이터 센터에서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새로운 메모리 인터페이스인 ‘컴퓨트 익스프레스 링크(CXL)’ D램 기술을 개발하고 인텔의 데이터센터와 서버 플랫폼 등에서 검증을 마쳤다. 인텔 표준 총괄인 데벤드라 다스 샤르마 펠로는 “CXL을 중심으로 강력한 메모리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삼성전자와 지속해서 협력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삼성전자의 최신 기술이 집약된 ‘갤럭시 북 프로’ 시리즈에는 최신 인텔 12세대 코어 프로세서와 인텔 아이리스 Xe 그래픽 등이 탑재됐다.

이 부회장과 겔싱어 CEO의 이날 만남으로 삼성과 인텔의 파운드리 협력 가능성이 주목된다. 인텔은 지난해 3월 파운드리 시장 진출을 전격 선언했지만, 아직 팹이 없어 어려운 상태다. 기술적으로도 삼성전자나 대만의 TSMC보다 크게 뒤처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삼성은 2019년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을 통해 메모리에 이어 2030년까지 파운드리를 중심으로 한 시스템반도체에서도 세계 1위로 도약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라이벌 관계인 두 회사는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으로 보이지만, 일각에서는 두 회사가 손을 잡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겔싱어 CEO는 지난해 1월 실적 발표에서 “우리 포트폴리오를 고려할 때 특정 기술과 제품에 대한 외부 파운드리 사용은 더 늘려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인텔이 주력 제품인 CPU를 자체 생산하고, 나머지 칩셋 등의 제품은 삼성전자 등에 생산을 맡길 수 있다고 추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