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철도노조 파업 4일째 첫 주말인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앞에서 열린 ‘현장인력 충원! 임금피크제 폐지! 대정부 교섭투쟁 및 철도파업 승리! 공공운수노조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천지일보 2019.11.23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철도노조 파업 4일째 첫 주말인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앞에서 열린 ‘현장인력 충원! 임금피크제 폐지! 대정부 교섭투쟁 및 철도파업 승리! 공공운수노조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천지일보 2019.11.23

법원 “연령 기준, 고용법 위반”

노동계 “환영, 아예 폐지해야”

경영계, 노사갈등 촉발 ‘촉각’

전문가 “판결, 모두에게 부담

시장 유연·안정성 보장 필요”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정년 이후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임금을 낮추는 ‘임금피크제’가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줄소송 우려가 제기되는 등 벌써부터 후폭풍이 거세다.

그동안 폐지를 주장해온 노동계 입장과 같이 대법원이 무효라는 첫 판단을 내림에 따라 피크제를 시행 중인 기업들을 대상으로 유사한 소송이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이미 1·2심에 계류 중인 관련 소송들도 근로자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올 가능성도 커졌다. 또 이를 채택한 전국 산업현장에서 노사 재협상이 불가피하다는 점도 거론되고 있다.

논란이 된 ‘임금피크제’는 노동자가 일정한 나이에 도달한 뒤 고용 보장이나 정년 연장을 조건으로 임금을 낮추는 제도다. 나이가 들면 비교적 젊을 때보다 노동 생산성이 떨어질 것으로 보고 정년 보장과 임금 삭감을 맞바꾸자는 취지로 2000년대 들어 도입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처럼 연령을 기준으로 적용한 임금피크제가 나이로 노동자를 차별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이를 두고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천지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나이에 의해 임금 조정을 하면 안 된다는 게 이번 판결의 핵심인데, 이로 인해 이제 경영계나 노동계 등 모두에게 서로 부담으로 작용하게 됐다”며 “결국 계약형 임금체계로 될 텐데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어느 정도 보장되면서 안정성도 보장되는 선진국 형태로 나아가야 한다”고 진단했다.

◆현장 혼란·노사갈등 우려

앞서 박근혜 정부는 60세 정년 의무화를 앞두고 일부 사업장에만 도입된 임금피크제를 산업 전반에 확대하고자 힘을 기울여왔다.

그 결과 2015년 말 모든 공공기관이 임금피크제 도입을 마쳤으며, 이를 도입한 300인 이상 기업들도 2015년부터 27.2%→46.8%→53.0%→54.8%→54.1%로 빠르게 늘어났다.

임금피크제 유형은 정년보장형(유지형)·정년연장형·고용연장형 등으로 다양한 만큼 사업장별로 도입 형태가 다를 수 있다. 이번 판결이 내려진 사례의 경우 정년보장형에 해당한다. 정년보장형은 기업에서 정해놓은 정년을 보장하는 것을, 정년연장형은 현재 정년을 더 연장하는 것을 전제로 임금수준을 조정하는 제도다.

이번 판결 사례에서는 근로자가 임금피크제 적용 이전에 해오던 일을 차이점 없이 그대로 해왔는데도 임금이 깎이면서 문제가 됐다. 이에 법원은 같은 생산성에도 떨어진 기본급을 지급받았다며 퇴직 때까지의 임금 차액을 청구하는 소송에서 근로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 당선인(제공: 대통령 인수위) ⓒ천지일보 2022.4.14
윤석열 당선인(제공: 대통령 인수위) ⓒ천지일보 2022.4.14

이를 두고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장은 “임금피크제는 고도성장과 베이비붐 등 유사한 과정을 겪었던 일본에서 유행한 뒤 우리나라에 도입된 제도”라며 “재설계되고 있는 정년연장형의 경우 인력조정의 필요성하고 인력 활용의 중요성을 조화시키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제도가 고령화 시대에 조기 퇴직하게 하는 우회적 수단으로 활용돼왔다”며 “단순히 인력조정의 수단으로만 활용하면 기업의 필요성만 주목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번 판결로 그간 나이에 따라 임금을 줄여온 기업들은 임금피크제 축소와 노사 대립 격화로 번지진 않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재로선 대체로 이번 판결이 회사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고용노동부의 행정 해석 등의 정부 가이드라인을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는 지난 2014년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면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적용 시기를 55세에서 57세로 연장하고 임금 감소율도 5%로 낮췄지만 노조들은 임금피크제 폐지를 요구해왔다. LG전자는 이보다 이른 2007년부터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58세부터 정년인 60세까지 적용되며 이 기간 매년 이전보다 10%씩 삭감되는 형태다. 그 외 많은 기업들이 임금피크제를, 그중에서도 정년연장형을 적용하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임금피크제 무효 판결 소식이 들리자 쌍수를 들어 반겼다. 이에 더해 한국노총은 적극 환영 입장을 표하면서도 노조 차원에서 임금피크제 무효화·폐지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측도 “전향적인 판단에 적극 환영한다”고 밝히면서도 “임금피크제 자체를 무효로 선언했으면 됐을 것을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 등을 도입한 경우 유효가 될 여지를 남겼다”고 전했다.

◆“노동부, 정책 방향 제시해야”

반면 노동부는 이번 판결이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이유로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가 유효하다는 건강보험공단 등의 판례가 이미 나와 있다는 점을 들었다.

그럼에도 이번 판결이 숙련된 경험자의 능력을 값싸게 쓸 수 있다는 제도를 악용하는 기업들에 대해 그동안의 임금차액을 보전해달라는 요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뒤따른다.

이를 두고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장은 “대법원판결이 나왔으면 모든 사람이 민사로 소송을 제기해 막대한 비용을 치르도록 두기보다 제대로 된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게 행정당국 노동부의 바람직한 태도”라며 “현장형 방식이나 합의된 방식으로 선택을 하도록 이끄는 방향이 맞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독일이나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근속을 활용하되 연금 등 사회적 혜택을 주면서 젊은 인력에 대한 육성을 하는 잡 스플리팅·쉐어링(노동력 분배) 방식을 쓴다”며 “청년 인력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육성되는 게 아니니까 인력을 공유하면서 기업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절충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처럼 향후 임금피크제를 적용한 기업들에 대한 법원과 정부의 판단은 삭감된 임금만큼 업무량이나 업무강도도 줄어들었는지 여부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임금피크제 주무 부처인 노동부는 앞으로 판례를 참고해 임금피크제를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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