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대법원. ⓒ천지일보 2018.7.3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대법원. ⓒ천지일보 DB

“임금피크제 인건비 줄일 목적… 연령차별 합리적 이유 없어”

임금 하락 불이익 크고 이후 업무 내용 차이도 없었다고 지적

타당성-불이익 정도-감액된 재원 사용처 등 판단기준도 제시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노사합의가 됐더라도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임금피크제’를 적용할 경우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임금피크제와 고령자고용법의 충돌 상황에 대한 대법원의 첫 결론이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6일 A씨가 과거 재직했던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을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앞서 A씨는 정년을 61세로 동일하게 유지하면서 55세 이상 근로자들의 임금을 감액하는 내용으로 한국전자기술연구원에 도입된 임금피크제가 고령자고용법 4조의4 1항을 위반해 무효라며 연구원을 상대로 임금 차액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법원에 따르면 임금피크제 적용으로 감액된 A씨 월 급여 액수는 성과 평가 결과 최고 등급일 경우에는 약 93만원, 최저 등급일 경우에는 약 283만원에 달한다.

이 재판의 쟁점은 A씨가 위반됐다고 주장하는 고령자고용법 4조의4 1항이 강행규정인지, 이 사건이 해당 조항을 실제 위반했는지 여부였다.

해당 조항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근로자 또는 근로자가 되려는 사람을 차별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철도노조 파업 4일째 첫 주말인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앞에서 열린 ‘현장인력 충원! 임금피크제 폐지! 대정부 교섭투쟁 및 철도파업 승리! 공공운수노조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천지일보 2019.11.23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철도노조 파업 4일째 첫 주말인 2019년 11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앞에서 열린 ‘현장인력 충원! 임금피크제 폐지! 대정부 교섭투쟁 및 철도파업 승리! 공공운수노조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천지일보 2019.11.23

1심과 2심은 모두 연령차별을 금지한 조항을 강행규정으로 판단하고, 임금피크제 효력을 인정하지 않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대법원 재판부도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고령자고용법 4조의4 1항은 강행규정에 해당한다”면서 “연령차별을 당한 사람은 국가인권위원회에 그 내용을 진정할 수 있고, 구제조치와 시정명령이 내려질 수 있으며, 시정명령 불이행시 과태료가 부과되는 점, 고용의 영역에서 나이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해 헌법상 평등권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려는 입법 취지를 고려하면 이 조항은 강행규정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 임금피크제는 피고의 인건비 부담 완화 등 경영성과 제고를 목적으로 도입된 것”이라며 “이런 목적을 55세 이상 직원들만을 대상으로 한 임금 삭감 조치를 정당화할 만한 사유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이 사건으로 인해 원고는 임금이 일시에 대폭 하락하는 불이익을 입었고, 업무감축 등 적정한 대상조치가 강구되지 않은 점, 이 사건 성과연급제를 전후해 원고에게 부여된 목표 수준이나 업무의 내용에 차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춰 보면 연령차별에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A씨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더라도 51세 이상 55세 미만 정규직 직원들의 수주 목표 대비 실적 달성률이 55세 이상 정규직 직원들에 비해 떨어지는데, 오히려 55세 이상 직원들의 임금만 감액돼 합리적이 못하다는 근거로 작용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KB국민은행 전국금융산업노조가 8일 서울 송파구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총파업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총파업은 2000년 옛 주택은행과의 합병 반대 이후 19년 만에 단행되는 파업이다. 노사는 이번 임금·단체협약(임단협)에서 성과급 지급 규모와 임금피크제 진입 시기, 페이밴드 제도 등 주요 쟁점을 놓고 협상했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천지일보 2019.1.8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KB국민은행 전국금융산업노조가 2019년 1월 8일 서울 송파구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총파업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총파업은 2000년 옛 주택은행과의 합병 반대 이후 19년 만에 단행되는 파업이다. 노사는 이번 임금·단체협약(임단협)에서 성과급 지급 규모와 임금피크제 진입 시기, 페이밴드 제도 등 주요 쟁점을 놓고 협상했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천지일보 2019.1.8

특히 대법원은 “임기피크제가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에 합리적인 이유가 없어 그 조치가 무효인지 여부는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 및 그 적정성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해 사용됐는지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정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일정 연령 이상 근로자의 임금을 정년 전까지 일정 기간 삭감하는 형태의 임금피크제에 대해 처음으로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와 관련 대법원 관계자는 “현재 다른 기업에서 시행 중인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나 하급심에 진행 중인 사건 관련 개별 기업들이 시행하는 임금피크제의 효력의 인정여부는 임금피크제 도입목적의 정당성 및 필요성, 실질적 임금삭감의 폭이나 기간, 대상조치의 적정성(임금삭감에 준하는 업무량 또는 업무강도의 저감이 있었는지 등) 감액된 재원이 도입목적을 위해 사용됐는지 등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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