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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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본이 겪고 있는 위기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그 이상으로 보인다. 아베 전 총리를 비롯해 현 기시다 총리까지 일본 극우주의 정치세력이 보이고 있는 정치행태는 한마디로 ‘저급하다’는 점이다. 뒤를 받쳐주고 있는 ‘미국의 힘’을 과신하기 때문일까. 일본 정부가 보이고 있는 독선적이고 고립적이며 동시에 대결적인 언행은 세계무대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다. 일본이 경제적으로는 세계 3위의 대국이지만 ‘진짜 선진국이 맞나’하는 의구심을 가진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일본이 경제적으로도 생각보다 더 큰 위기를 맞고 있다는 분석이 일본 내에서도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일본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노구치 유키오(野口悠紀雄)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가 최근 한 경제전문지에 기고한 글에서 일본이 곧 선진국 대열에서 탈락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분석을 내놓은 것이다. 노구치 교수는 그 근거로 일본의 1인당 GDP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밑으로 떨어졌다는 사실과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감소 등을 꼽았다. 특히 노구치 교수는 1인당 GDP(2020년 기준)가 일본(4만 146달러)이 한국(3만 1496달러)보다 아직은 높으나, 문제는 ‘성장률’이라며 조만간 한국이 앞설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일본은 1990년대 발생한 버블 붕괴를 계기로 벌써 30년째 장기적인 경기침체에 시달리고 있다. 일본 경제의 동력이었던 높은 성장세가 꺾인 데다 노동력 감소와 고령화로 인해 눈덩이 국채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국가재정은 취약하다. 1인당 GDP가 높아지기 어려운 구조가 돼버린 것이다.

보통 ‘선진국(Developed Countries)’을 말 할 때 그 기준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정치, 경제, 문화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지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역시 경제, 그 중에서 1인당 GDP가 가장 중요한 지표로 꼽힌다. 이 밖에도 수출의 규모와 품목의 다양성, 글로벌 경제와의 네트워킹 그리고 산업과 과학기술의 수준 등도 중요한 지표다. 물론 민주주의와 삶의 질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러한 기준을 근거로 35개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한국과 일본, 대만, 싱가포르, 이스라엘 등 5개국이 포함돼 있다. 노구치 교수가 일본의 선진국 탈락 가능성을 강조하는 것도 1인당 GDP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등은 빠른 속도로 나아가고 있지만, 일본은 30년째 거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 10년간 OECD 회원국의 평균 1인당 GDP 증가율은 1.09배였지만, 같은 기간 일본의 증가율은 0.89배에 그쳤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노구치 교수는 구체적으로 “2030년경이 되면 일본의 1인당 GDP는 OECD 평균의 절반 정도 수준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이 더는 선진국이라고 말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노동생산성에서도 한국에 이미 역전 당하고 있다며, 이대로 간다면 ‘G7 회원국’ 자리를 한국에 내줘도 할 말이 없다는 설명이다. 심지어 노구치 교수는 여러 통계자료를 인용하면서 실질적으로는 “한국이 이미 일본을 앞질렀다”는 평가까지 내놓고 있다. 물론 노구치 교수의 분석이 가장 정확하다고는 볼 수 없다. 어떤 통계자료를 기준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 다른 설명도 가능하겠지만, 일본의 현실을 보수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반대로 한국의 현실에 대해서는 너무 전향적으로 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노구치 교수의 분석을 언급하는 것은 이제 한국과 일본의 격차는 예전의 그런 격차가 아니며, 앞으로는 얼마든지 한국이 일본을 뛰어 넘을 수 있다는 것을 좀 더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노구치 교수가 제시한 한국과 일본의 격차 가운데 또 하나가 평균 임금이다. 노구치 교수는 OECD 기준 2020년 평균 임금에서 한국이 4만 1960달러(약 5033만원)로 일본의 3만 8515달러(약 4619만원)를 앞섰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최근 발표한 국가 경쟁력 순위에서도 한국은 23위, 일본은 31위로 차이가 난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노구치 교수의 메시지는 일본 정부에 대한 경고의 의미가 더 크다. 지금 일본이 정신 차리지 않으면 조만간 G7에서 일본이 탈락하고 그 자리에 한국이 들어 갈 수도 있다는 경고성 메시지다. 노구치 교수는 국내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도 중국이 급부상 할 때 일본은 값싼 중국 제품과 경쟁했지만 한국은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모델로 부가가치를 높이는 전략을 택했다며 바로 이런 점이 오늘의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소니 등 일본의 내로라하는 세계적 기업들의 몰락을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특히 반도체 산업의 부침을 보면 노구치 교수의 분석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그러나 노구치 교수가 충격적으로 진단한 일본의 ‘우울한 미래’는 한국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이 비교적 높다지만 노동시간의 과잉과 비정규직 차별 , 각 부문별 임금의 격차는 심해도 너무 심하다. 언제까지 양극화를 용인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한국의 저출산 문제는 일본보다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합계출산율 세계 최하위는 이미 오래전 얘기다. 그리고 노동인구 감소와 고령화 문제는 이미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다. 한국이나 일본 모두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한국의 더 빠른 발전과 선진국 지위의 향상 그리고 G7 회원국으로의 진입은 지금 일본의 위기로부터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처럼 중요한 시점에서 국민 갈등이 증폭되고 국론이 갈라지는 것은 최악이다. 민주주의가 더 발전하고 심화돼야 하는 이유다. 마침 20대 대통령선거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대선이 끝내는 민주시민의 힘으로,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결정적 기회가 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렇다면 G7도 그리 멀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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