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not caption

제20대 대선을 불과 두 달 앞두고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의 선대위가 전면 개편됐다. 아니 개편이기보다는 ‘몰락 후 재건’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기존의 선대위가 내부 갈등과 충돌로 스스로 무너졌기 때문이다. 윤 후보가 지난 5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존 선대위를 해산하고 젊은 층 중심의 슬림형 실무 선대위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중량감만 크고 규모에 짓눌려 불협화음이 끊이질 않는 기존의 선대위 대신, 윤 후보 직할 체제의 작고 빠르며 젊은 선대위를 구성해서 이번 대선에 임하겠다는 뜻이다.

윤석열 후보 스스로 밝혔듯이 기존 선대위의 좌충우돌, 불협화음은 오롯이 윤 후보 본인의 책임이 제일 크다. 당초 ‘당 중심’의 선대위 구상을 밝혔다면 당 중심으로 가는 것이 옳다. 거기엔 이준석 대표의 역할과 당 중진들의 전면 배치 그리고 선대위와 당의 유기적 소통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에 대한 윤 후보의 신뢰와 양보가 전제돼 있다. 그런데 불과 한 달여 만에 그 시도가 파산 났다면 당에 대한 신뢰가 깨졌거나 아니면 더 이상 당에 양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런 현실에서 이를 감내해야 할 당 사람들의 심경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당장 말은 못 하지만 서운함과 배신감으로 가득할 것이다.

아무튼 윤석열 후보의 새로운 선대위가 이번 대선을 책임질 수밖에 없게 됐다. 언제까지 자중지란으로 자멸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새로운 선대위가 소임을 다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조직이나 인선 등을 좀 더 두고 볼 일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윤 후보가 결정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윤 후보는 이 날 “국민들이 기대했던 처음 윤석열의 모습으로 돌아가겠다”면서 자신부터 완전히 바꾸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더 겸허하고 낮은 자세로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귀 기울이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여기까지는 윤 후보가 설정한 방향이 옳다. 구태에 찌들고 강경 보수에 편향된 듯한 행태, 그리고 상식 밖의 망언 등은 국민이 기대했던 ‘윤석열의 것’이 아니다. 그걸 통째로 바꾸겠다고 하니 일단 윤 후보의 의지는 평가할 대목이다.

그러나 이튿날인 6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벌어진 일은 전날의 대국민 메시지가 허망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겸허나 낮은 자세, 변화 등의 말들이 또 허언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날 오전 이준석 대표는 권영세 사무총장의 임명안 상정을 거부했다. 윤석열 후보가 전날 선대위를 해체한 후 선대본부장으로 권영세 의원을 임명한 뒤, 다시 권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겸임 내정했다. 하지만 이 대표가 이에 안건상정 자체를 거부한 것이다. 선대위 구성은 윤 후보 의지를 반영하는 것이 옳다면, 당 사무총장 인선은 이 대표의 목소리도 중요하다. 그럼에도 윤 후보는 자신의 의지대로 밀어붙였다. 낮은 자세는커녕 ‘완장을 찬 점령군’ 행태에 다름 아니다. 윤 후보와 이 대표의 갈등이 사실상 폭발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자 국민의힘 원내지도부가 의총에서 이준석 대표의 사퇴 촉구를 결의하자는 제안까지 내놓았다.

김종인 전 위원장에 이어 이 대표까지 몰아내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이런 행위 자체가 옳은지, 옳지 않은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선대위 재편 이후 낮은 자세와 겸허를 강조했던 윤 후보의 뜻과는 거꾸로 가고 있다는 뜻이다. 이후 의총에서 실제로 이 대표 사퇴론이 공론화될지는 지켜볼 일이지만, 이미 선대위 재편의 의미가 왜곡되고 있을뿐더러 대담한 변화에 대한 대국민 약속도 하루 만에 흐지부지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결국 모든 후유증은 윤석열 후보의 정치적 부담으로 가중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윤석열 후보는 지금 다시 벼랑 끝에 서 있다는 생각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선대위 몰락과 재건 과정의 갈등과 충돌은 부가적인 위기 요인으로 남겨 두더라도, 최근 윤 후보가 안고 있는 결정적 위기는 다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당장 이준석 대표에 대한 총공세로 인해 청년들의 지지세가 현격히 줄어들 것이다. 그동안 국민의힘과 윤 후보를 지지했던 결정적 우군이었던 그들이 떠난다면 윤 후보가 기댈 언덕은 그리 많지 않다. 혹여 청년들의 지지가 끝내 제3지대 정치나 일부 이재명 후보로 옮겨간다면 더 낭패가 될 뿐이다. 둘째, 김종인 전 위원장과의 갈등과 결별은 중도층 표심에 적잖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김 전 위원장의 상징성은 합리적 보수 또는 중도보수의 이미지가 강하다. 물론 중도보수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김 전 위원장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김 전 위원장조차 껴안지 못하는 윤 후보에 대한 그들의 부정적 기류는 이전보다 더 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셋째, 그동안의 지지율 하락과 선대위 재편 과정에서 드러난 윤 후보의 정치적 자질 부족 그리고 독선과 망언으로 인해 당 내에서는 홍준표 의원, 당 밖에서는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후보 교체론 또는 후보 단일화론이 그것이다.

앞서 밝힌 세 가지의 위기 국면은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변수’라는 점에서 윤 후보에겐 결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어떤 것도 윤 후보가 쉬 풀어내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최근의 엄혹한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물론 상황이 이렇게 벼랑 끝으로 몰린 것은 윤 후보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정치 초보’니 ‘정책 무지’니 하는 변명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지금은 대선 본선 과정이다. 그리고 악다구니 쓰면서 ‘반문’이나 ‘정권교체’만 외치는 후보는 지지층 결집 외에는 외연도, 미래도 없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온전하게 ‘윤석열의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결국 국민이 판단할 것이다. 지금 윤 후보에게 큰 위기는 분명하다. 그러나 그 속에 기회가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앞으로 어떻게, 얼마나 변할지 좀 더 관심 있게 지켜볼 일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