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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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지지율이 오르지 않고 있다. 아니 벌써 몇 달째 횡보 지지율이다. 그러다 보니 이젠 답답함을 넘어 위기감마저 느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 얘기다. 잠시 단독 1위 지지율을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접전, 또는 조금 밀리는 양상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로 갔던 젊은 지지층이 다시 윤 후보 쪽으로 되돌아가다 보니 윤 후보의 상승세 기류가 확연한 반면, 이 후보는 여전히 답답한 모양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 내에서도 ‘586그룹’의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리고 이재명 후보의 최측근 핵심 그룹인 ‘7인회’가 지난 24일 기자회견을 통해 전격적으로 용퇴를 선언했다. ‘이재명 정부’에서는 그 어떤 임명직도 맡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민주당 지도부가 결단을 내렸다. 먼저 송영길 대표가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른바 ‘586 그룹’의 인적쇄신에 물꼬를 트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앞으로 송 대표의 의지를 뒷받침하는 후속 조치도 가시화될 것이다. 문제가 많은 의원들에 대한 의원직 제명 절차나 동일 지역구에서의 3선 연임 초과 제한 등도 힘을 받을 것이다. 물론 당내 반발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재명 후보의 승리를 위한 ‘인적 쇄신론’에 대해 드러내 놓고 반발하기도 쉽지 않다. 민주정치에서 선거정치가 갖는 큰 강점 가운데 하나다. 이처럼 승리를 위해서는 그 어떤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은 늘 이렇게 강력한 힘을 가졌다. 실제로 그 효과가 나타났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 ‘7인회’의 용퇴 선언은 1997년의 15대 대선 때 당시 김대중 후보 측에서 나온 동교동 비서 출신의 핵심인사 7명의 용퇴 선언과 매우 유사하다. 당시 대선을 불과 3개월 앞둔 상황에서 김대중 후보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집권당이던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도 여러 의혹에 휩싸이면서 지지율이 하락하긴 했지만 여전히 가장 강력한 후보였다. 당시 이인제 후보의 ‘국민신당’은 출범하기 전이었다. 이러한 국면에서 권노갑, 한화갑, 김옥두, 설훈 등 동교동계 핵심 인사 7명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대중 정부’에서는 그 어떤 임명직도 맡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당시만 해도 ‘가신 정치’ 논란으로 인적쇄신 요구가 빗발치던 시점에서 김대중 후보 측에서 먼저 핵심 측근들의 용퇴 선언이 나온 것이다. 그 효과는 생각보다 컸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DJP연합’이 가능했던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았다. 그리고 권노갑 등 7인의 용퇴 선언은 김대중 후보 당선의 중요한 모멘텀이 됐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이번 이재명 후보의 ‘7인회’ 용퇴 선언을 보면서 25년 전의 동교동계 용퇴 선언을 떠올린 것은 지금도 그 때처럼 대선 승리가 불투명하다는 점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인적쇄신 요구가 생각보다 높다는 점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인사정책은 국민적 저항과 분노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그 상징격인 ‘조국 사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게다가 지난 총선에서 전체 의석수의 3분의2 가량을 차지한 거대 여당 민주당의 행태는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했다. 압도적 다수의 힘은 정치개혁의 동력이기는커녕 오히려 오만과 불손의 이미지로 각인됐다. 특히 ‘연동형 비례제’ 도입에 앞장서다가 막판에는 ‘위성 정당’ 창당을 통해 그 취지마저 짓밟은 행태는 기득권 정치세력의 ‘나쁜 정치’에 다름 아니었다. 국민은 이런 민주당의 행태를 잘 알고 있다. 바닥까지 내려갔던 국민의힘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청와대 권력을 비롯해 중앙정치와 지방정치까지 압도적 다수당의 힘을 가진 민주당을 향해 그동안 국민에게 무엇을 보여줬느냐고 묻는다면 딱히 답할 것도 없을 것이다. 반대로 아파트값 폭등과 민생현장의 아우성은 이번 대선을 앞두고 정권교체의 목소리를 더 키웠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국민적 여론 앞에 정권재창출론은 설득력이 약했다. 이재명 후보가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박스권 지지율’에 갇혀있는 결정적 원인인 셈이다. 민주당 지지층마저 쉬 마음을 주지 못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25년 전 15대 대선을 앞두고 던진 동교동계 핵심 측근들의 용퇴선언은 국민들의 인적쇄신 요구에 대한 적극적 화답이었다. 그 결과는 헌정사상 첫 정권교체로 가시화됐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불과 5년 전의 촛불이 꺼져가고 있다. 그간 문재인 정부의 노력은 생각보다 헌신적이었다. 국민도 모르진 않는다. 여전히 40%대 안팎의 높은 지지율이 그 증표다. 따라서 헌정사상 처음으로 ‘레임덕 없는 대통령’이 될 가능성도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기대치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 정권이 앞으로 5년 더 연장되는 것에는 반대하는 여론이 많은 이유다. 기대가 높을수록, 책임이 클수록, 힘이 셀수록 그만큼의 책임과 성과가 나왔어야 했다. 그것이 어려웠다면 내부의 치열한 성찰과 인적쇄신이라도 끊임없이 단행했어야 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국민의힘 탓’ 하면서 국민의힘과 싸우고 싸우며 또 싸웠다. 정치혁신은커녕 편 가르기로 인한 ‘정치의 실종’에 다름 아니었다.

이번 ‘7인회’의 용퇴 선언이 한낱 ‘쇼’로 보이지는 않는다. 지난 15대 대선 때의 상황과 너무도 닮았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서 송영길 대표의 불출마 선언, 그리고 뒤이을 잇단 혁신적 조치들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데도 동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정치는 먼저 민심을 얻는 일부터 고민해야 한다. 민심이 원한다면 던질 것은 과감하게 던져야 한다. 그것이 정치의 문법이며, 지도자의 결단이다. 민주당의 혁신은 더 강하게, 더 지속돼야 한다.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말이 나올 때까지 분골쇄신해야 한다. 그래야 떠났던 청년들의 시선을 받을 수 있을 것이며, 여전히 관망 중인 중도층에도 지지를 호소하는 명분이 설 것이기 때문이다. ‘이재명의 민주당’은 충격적일 만큼 스스로를 던져야 한다. 한때 유행했던 ‘육참골단(肉斬骨斷)’이란 말이 딱 지금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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