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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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윤석열, 국민의당 안철수,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가 3일 밤 TV토론에서 맞붙는다. 20대 대선이 34일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처음 열리는 TV토론이다. 게다가 여야 주요 정당의 각 후보 4명이 모두 참여한다는 점에서 국민적 관심도 높다.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 선거가 갖는 정치적 의미를 생각한다면 이번 첫 TV토론은 늦어도 너무 늦었다. 하지만 그동안의 지루한 힘겨루기를 뒤로하고 여야 주요 정당의 각 후보가 참여한다는 점에서는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사법부의 판단이 아니라 먼저 정치적 합의로 이뤄졌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이 또한 우리 정치권의 역량 부재로 봐야 할 것이다.

사실 그동안 TV토론이 열려도 수차례 열렸어야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첫 TV토론을 한다는 것부터 상식 밖이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5년을 책임질 대통령을 선택하는 일이다. 어느 후보가 어떤 정책과 비전을 갖고 있으며, 또 어느 후보가 더 정직하고 능력과 자질을 갖고 있는지를 국민은 궁금하고 또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TV토론은 그런 국민적 바람을 어느 정도 해소시킬 수 있을뿐더러 민주정치의 생명인 ‘공론의 장’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 성숙한 시민의식은 이런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한 조직체의 운명은 리더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배는 선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듯이 모든 조직체의 향방도 예외가 아니다. 거대한 함선과도 같은 국가의 운명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민주국가에서는 모든 주권이 국민에게 있지만, 매 순간마다 국가의 향방을 가르는 것은 대통령의 역할이 제일 중요하다. 더욱이 항해하는 바닷길은 너무도 거칠고 험난하다. 그리고 큰 배 위에서는 너무도 다양하고 복잡한 세상만사가 연일 펼쳐지고 있다. 갈등과 분열, 탐욕과 저주 그리고 음모와 배신이 넘쳐난다. 따라서 이 모든 위험을 끌어안고 목적지로 이끌어야 할 선장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렇다면 거대한 함선의 리더는, 한 국가의 대통령은 정말 스마트해야 한다. 최소한 무능하거나 무지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와 ‘새로운물결’ 김동연 대선 후보가 설 연휴 마지막 날인 2일 CBS 방송국에서 양자 정책토론회를 가졌다. 비록 지지율은 높지 않지만 정책통인데다 여권 성향으로 분류되는 김 후보가 이 후보와의 양자 정책토론회를 갖는다는 소식에 정치권 안팎의 관심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주요 대선후보들의 첫 정책토론회라는 점에서도 관심은 더 높았다. 여기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두 후보의 정책토론회는 진지했고 유익했다. 경제부총리를 지낸 김 후보가 이 후보를 향해 기본소득과 부동산 대책 등 재원의 근거를 따지며 핵심 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파고드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이에 이재명 후보도 기본소득은 국민 의사를 존중해서 좀 더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자신의 부동산 정책 핵심 공약인 311만호 건설은 임기 내 완성하겠다는 것이 아니라며 일각의 졸속 정책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켰다. 대북정책과 관련해서도 문재인 정부의 정책기조를 잇겠다고 밝혔다. 이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확실한 차별성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를 지켜본 많은 국민은 이 후보와 김 후보의 정책토론회 그 이후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게끔 두 후보의 정책토론회가 건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후보가 다소 보수적인 김 후보와 손을 잡는다면 정책적 외연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봤을 것이다. TV토론의 힘이 그런 것이다. 토론과 논쟁을 통해 경쟁과 연대의 구도를 더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책선거는 이런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말로는 정책 운운하면서도 입만 열면 정쟁과 음해, 고소와 고발로 맞서는 작금의 정치판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뜻이다.

3일 밤 열리는 여야 주요 4당 대선후보의 첫 TV토론회에 대한 관심도 어느 때보다 높다. 제대로 된 정책역량과 리더로서의 자질을 유감없이 보여 줄 수 있을지, 아니면 또 ‘편 가르기’와 소모적 정쟁으로 사나운 모습만 보여줄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재명 후보는 집권당 후보인 만큼 철저하게 ‘정책비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동안 쏟아낸 정책공약에 대해 더 구체적이고 명료한 의지를 밝혀야 한다. 야권 대선 후보들이 혹여 소모적 정쟁을 언급하더라도 자제할 것은 자제하고 밝혀야 할 것은 분명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집권당 후보다운 능력과 처신으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그동안 미지에 쌓였던 자신의 정책과 비전, 그리고 시대정신을 명료하게 설명해야 한다. 대선후보로서 전 국민 앞에 나서는 사실상의 ‘데뷔 무대’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공허한 정치 구호나 하나마나한 한 줄짜리 공약으로는 국민의 표심을 얻기 어렵다. 비록 뒤늦게 정치권에 뛰어들었지만, 그간 갈고 닦은 정치적 자질과 정책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줄 수 있다면 윤 후보 입장에서는 최고의 성과를 얻은 것에 다름 아니다. 상대 후보를 깎아내리기 전에 ‘자신의 것’을 마음껏 보여줘야 한다는 뜻이다. 이전투구와 무차별적 정치공세는 안하느니 못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세계는 생각보다 더 급변할 것이다. 경쟁은 더 치열할 것이며, 갈등은 더 심화될 것이다. 자칫하면 글로벌 경쟁에서 하루아침에 밀려날 수도 있다. 지금 일본의 위기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지금처럼 경쟁이 전면화된 글로벌 사회에서 무능한 지도자가 국가를 어떻게 위기로 몰고 가는지, 일본은 그 생생한 교훈이 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도 방심할 상황이 아니다. 그래서 이번 대선이 더 중요하다. 국민은 정말 ‘스마트한 대통령’을 원하고 있다. 아니 스마트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구태의연한 상식 밖의 인물은 절대 안 된다. 그럼 누가 적임자일까. 3일 밤 TV토론회에서 리얼하게 그들의 민낯을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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