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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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저물고 있다. 어느 핸들 다사다난했지만 2021년 신축년 올해는 더 치열하고 더 고통스런 한 해였다. 무엇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 국민들의 심신을 지칠 대로 지치게 만들었다. 벌써 3년째 접어드는 세계적인 탄식이요, 눈물이다. 우리 정부의 돋보인 노력으로 인해 우리네 사정이 좀 나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영세 사업자들의 고통과 비명 소리는 여전히 귓전을 때리고 있다. 언제쯤 끝날지 모르는 이 힘겨운 싸움, 그렇다면 더 고통 받고 있는 이웃들에게 더 많은 지원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오늘 이 시점에서도 핵심은 역시 ‘정치’다. 코로나19 사태가 우리만 피할 수는 없었던 일이었다면, 정치는 국민의 뜻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문제다. 특히 한국정치의 고질적인 적폐인 ‘진영 정치’부터 우리 스스로 완화시킬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아픔은 너무도 크다. 이를 위해 먼저 문재인 정부 임기 초에 ‘개헌’에 좀 더 힘을 실었다면, 그리고 지난 21대 총선에서 ‘연동형 비례제’가 제대로 실현됐다면 하는 아쉬움이 너무도 크다. 정치구조와 제도개혁 없이는 진영 정치의 적폐를 청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서 진영 정치의 대결구도가 더 심화됐다는 점에서 ‘조국사태’ 등 인사 논란은 두고두고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내편만 찾는다면 상대편은 저항하기 마련이다. 최소한 국정운영은 편싸움이 아니라 화합과 통합의 가치를 포기할 수 없는 영역이다. 정책과 경쟁, 민생과 미래는 그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도 이제 4개월여 남았다. 차기 대선은 불과 70여일 남은 시점이다. 이때쯤이면 문재인 정부에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었어야 했는지 그 답은 더욱 명료해 진다. 촛불 몇 개를 던져서라도 ‘들불’로 만들었어야 했다. 상대방의 적폐를 지목하기 전에 ‘내부의 적폐’부터 청산했어야 했다. 몇 사람의 충복을 내치더라도 ‘민심’을 얻었어야 했다. 높은 곳에 있는 정의보다 가까이 있는 ‘공정’에 더 집중했어야 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의미를 말 할 때는 당위보다 ‘구체적인 성과’로 보여줬어야 했다. 하지만 임기 막판까지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촛불항쟁의 그 뜨거웠던 열기를 감안한다면 참으로 안타깝고 아쉬운 대목이다. 그럼에도 헌정사상 처음으로 ‘레임덕 없는 정부’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해마다 그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하는 ‘교수신문’이 2021년 올해엔 묘서동처(猫鼠同處)를 꼽았다. 쥐를 잡아야 할 고양이가 쥐와 어울리는 것처럼, 도둑을 잡아야 할 사람이 그 도둑과 한패거리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문재인 정부에겐 뼈아픈 경구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탄핵당한 세력인 국민의힘과 결국 각 자의 진영으로 갈라져 서로 싸우면서 동시에 기득권 세력으로 함께 어울리는 한 패가 되고 말았다는 뜻이다. 그 파장은 결코 적지 않았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갑자기 검찰총장에서 대선후보로 변신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되고 말았다. 정책이 실종되고 정쟁이 난무하는 막장 대선판이 된 배경이기도 하다. 기존의 정치질서를 혁신하고 다양한 정책 경쟁을 추구하던 ‘제3지대 정치’가 몰락한 원인이기도 했다. 더 나아가 저주와 음모, 비난과 막말, 고소와 고발이 난무하면서 ‘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 마치 전쟁터 같은 대선판이 되고 말았다. 그 결과 국민이 입고 있는 상처는 너무도 커 보인다. 민생과 정책이 들어설 공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국민이 볼 때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서로 싸우는 관계지만 실상은 한 패나 다름없다고 보는 것이다. 싸우면서도 결국은 다시 한 패가 될 특수관계, 즉 ‘묘서동처’의 교훈에 딱 어울린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만 해도 민심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변화와 개혁, 희망과 미래를 향한 열기가 넘쳤다. ‘이게 나라냐’고 묻은 국민을 향해 문재인 대통령은 그 답을 줄 것만 같았다. 2017년 당시 ‘교수신문’이 선정한 사자성어도 ‘파사현정(破邪顯正)’ 이었다. 사악하고 그릇된 것을 부수고 옳고 정의로운 것을 바로 세운다는 뜻이다. 그로부터 불과 4년 만에 ‘파사현정’이 ‘묘서동처’로 바뀐 것이다. 문재인 정부를 향한 실망과 비판 여론이다. 불과 4년 만에 민심이 그렇게 돌아섰다는 얘기다.

최근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부동산 정책 등 정책행보를 바쁘게 이어가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집권당 후보로서의 강점을 살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진영정치의 적폐를 걷어내는 바람직한 대안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직 표심을 정하지 못한 중도층과 젊은층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 후보의 지지율 상승세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본다. 윤석열 후보와 김건희씨를 때리기 보다는 ‘이재명, 당신의 능력을 보여 달라’는 것이 합리적 민심의 상식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반면에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행보는 여전히 안타깝다. 최근 부인 김건희씨의 기자회견이 ‘보여주기식’으로 끝난 것도 모자라, 당내 또는 대선캠프 내의 갈등과 혼선도 그치질 않고 있다. 이유를 막론하고 모든 결과는 윤 후보의 ‘정치력 한계’로 연결될 것이기 때문에 윤 후보가 입을 타격은 생각보다 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윤 후보가 던지는 상식 밖의 발언과 망언도 그치질 않고 있다. 그런 발언을 언제까지 들어 줄지 국민들의 인내력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부터라도 뭔가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켜켜이 쌓이는 망언과 입만 열면 쏟아지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후보를 향한 정치공세도 이젠 새롭지 않다. 아니 지겹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는 윤 후보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기도 어렵다. 국민은 윤 후보에게도 바라고 있다. ‘윤석열, 당신의 능력을 보여 달라’고 말이다. 곧 2022년 임인년 새해 아침이다. 무엇보다 미래와 희망을 이야기하는 시점이다. 하지만 이 때도 상대방을 향한 거친 비난과 저주, 망언 등으로 일관할지, 아니면 확 달라진 윤 후보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지 좀 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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