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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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대하거나 혹은 기대하지 않더라도 미래의 시간들이 빠르게 다가와 현재를 다독이다가 또 쏜살같이 지나가 과거라는 이름으로 흔적을 쌓는다. 그 끊임없는 일상의 흐름 속에서 <아침평론>이 한 주일의 첫 장을 여는 월요일에 다시금 섰다. 누구에게라도 미명이 끝나고 신선한 아침을 맞이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은 무더위 너머로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같이 시원하고, 열기를 식히는 여름 소나기처럼 잠시간 위안을 주고 있어 더없이 상쾌하다.

지난 말복 날 늦게까지 비가 오더니만 한낮의 열기도 한풀 꺾였다. 그 영향으로 요 며칠간은 시원하게 지냈는데, ‘무더위가 오래갈 것 같다’는 당초 기상예보와는 다르게 아무래도 올해 여름은 이쯤에서 끝나려나 보다. 그래도 밤잠을 설치게 했던 열대야 현상이 더러 있었고, “보건환난이 빨리 끝나 제발 마스크라도 벗어보자”는 국민 희망과는 다르게 코로나 확산세가 더해지는 현실이다. 이 때문에 개인 일상이나 사회 전반에서 돌아가는 일들이 뒤죽박죽 꼬였다.

그런 답답함 속에서 느닷없이 ‘국민 삶을 정부가 왜 책임지느냐’는 말이 논란 속에 휩싸였다. 물론 국민의 삶은 그 주체인 국민 스스로가 책임져야 한다는 이야기겠지만 그 배경에는 정부 역할에 대한 불만과 국정 지도자인 대통령의 책무와 능력과도 무관치가 않다. 공사 어느 조직이든 유능한 리더가 존재해야 조직원들이 개고생하지 않는다는 말은 이제 일반화되어버렸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대선 때가 다가오면 주변에서 들리는 ‘대통령 후보감을 외국에서 수입하자’는 우스갯소리는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받는 최고 지도자가 없다는 뜻이어서 씁쓸하다.

‘좋은 정부’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기본적으로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면서, 국민에게 현재는 물론 미래에 대한 불안을 없애고, 신뢰와 희망을 주는 정부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숱한 지도자들이 나와 정부를 이끌었지만 ‘실패한 정부’로 낙인된 것은 권력을 거머쥔 자들의 정치적인 의도에서 나온 덮어씌우기인지, 아니면 전 정부에서 권력을 좌지우지했던 그들이 정말 무능했기 때문이었는지 아리송한데, 그 답은 후세의 역사가 판단해줄 것이리라.

시절이 수상하고 답답하던 차에 기분전환 겸해 ‘좋은 정부와 유능한 지도자’와 연관된 골몰을 하던 중 갑자기 남미(南美) 우루과이의 한 지도자가 생각났다. 하필 ‘우루과이’냐 할 테지만, 세계 민주주의 서열을 매기는 유수 기관의 평가척도에서 ‘민주주의지수 16위’ 평가를 받아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지수 순위(23위)보다 앞선 나라다. 지금은 정계에서 은퇴했지만 그 같은 유능한 국가지도자가 있었기에 우루과이의 민주주의 지수와 국민 행복도는 더 높아진 것이다.

바로, 호세 알베르토 무히카 코르다노(85, 호세 무히카) 전 대통령이다. 재임 시절(2010∼2015)에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불리면서 소박했다는 점과 우루과이 정치·경제 발전의 토대를 닦았다는 평가를 받은바 있는 호세 무히카 대통령은 취임 당시 재산이 현금 1800달러(195만원)와 87년식 폴크스바겐 비틀 한 대와 농가, 농기구 몇 대가 전부였다. 그리고 대통령 재임기간 월급(1만 1000달러)의 90%를 기부했고, 관저 대신에 자신의 살던 곳의 농가에 살며 낡은 차로 출퇴근했으며, 대통령이 되어서도 자신의 프로필에는 ‘농부’라고 적은 지도자였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무히카는 어릴 때부터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고, 1960~70년대 군사독재정권이 들어선 뒤 ‘도시 게릴라 운동가’로 활동하다가 투옥돼 14년간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석방된 뒤 정계에 투신해 1994년 하원의원으로 선출된 이후, 1999년 상원의원을 거쳐 2005년 농축수산부장관을 맡았고 2009년 11월 대선에서 중도좌파연합파 후보로 나서서 마침내 우루과이 대통령이 됐지만 그의 생활철학은 오로지 약자와 젊은이, 국민생각뿐이었다.

그가 한 은퇴연설 중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인생에서 성공은 승리가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일어나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수십년간 나의 정원에 증오는 심지 않았다. 증오는 어리석은 짓이다. (이러한 앎이) 인생의 큰 교훈이었다.”

이 연설을 들은 우루과이의 젊은이들은 환호했고, 정치인들은 멋진 정치철학을 깨달았으며, 국민들은 최고의 찬사와 존경을 보냈다. 특히 국내외적으로 어두운 단면사이기도 한 정치적 복수, 그로 인해 권력의 이름으로 치장된 증오가 얼마나 어리석다는 점을 일찍이 간파한 유능한 지도자로 인해 우루과이 국민들은 편안했다.

이같이 참된 지도자와 좋은 정부를 만난다는 것은 국민의 복이다. 그러기에 민주주의의 참된 가치, 국민 행복을 위해 반드시 실현돼야 할 게 바로 ‘좋은 정부’인 것이다. 권력자나 정부 스스로 만들어낼 의지와 능력이 없다면 국민들이 나서 ‘좋은 정부’의 길을 열려고 노력해야 함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새벽 운동길에 보니 비 그친 푸른 하늘 아래 매미소리 청량한 가운데, 이 땅에 무궁화가 새롭게 피어나고 있다. 미명이 사라지면서 아침이 서서히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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