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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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돌아가는 사연들은 동네 노인들이 더 잘 안다. 정치 이야기도 척척박사다. 초로의 노인 이 땅거미가 질 무렵 폭염을 피해 아파트 인근 공원 벤치에 앉아 나누는 정치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정치평론가나 정치인 뺨을 치고도 남을 만큼 훤히 꿰뚫고 있다. 흘러나오는 말에 귀기울이다 보면 ‘정의가 조금은 살아있는가 보네’라는 말이 들리고 “정권 말이라서 그렇제”라는 소리도 들리는데 아마도 김경수 경남지사의 대법원 유죄 판결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정치인이나 유력자들이 대선에서 특정후보를 위해 다른 후보의 사실과 다른 험담을 대대적으로 확산시키는 일은 범죄행위가 틀림이 없다. 유죄 선고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피고인도 무죄 추정의 원리에서 자신의 무죄를 적극 주장해 법정에서 다퉈야 하겠지만, 최종심에서 일단 유죄로 확정되면 그에 따른 피고인의 주장은 사실로 받아지지 않게 되고 그에 따른 응분의 죗값을 치르는 것은 당연하다. 설령 본인에게 억울함이 있더라도 판관이 법에 따라 결정한 것이니까 달리 방도가 없으니 간혹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도 나오는 것이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에서는 형사사건보다 민사사건이 더 많은 것 같다. 경기침체로 소상공인들이 빚더미에 앉아 있고, 중소기업도 매출액이 줄어들어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관광이나 숙박업소, 음식점들은 코로나19로 인한 손해가 큰데 소송이라도 걸리면 더 힘이 든다. 원고든 피고든 간 현시점에서 다투는 민사소송에서는 코로나 사태로 인한 요인이 많은바, 법원에서는 코로나 시대의 불가항력 등 예외적 사항에 관심을 갖고 전향된 모습을 보여야 하건만 손해배상이나 채권채무 등 관련 민사소송에서 평상대로 정상적인 상황을 고수하는 게 현실이다.

제주도에서 호텔업을 경영하는 지인의 사연을 들어보면, 코로나가 몰고온 것이 비단 서민들에게만 큰 불편과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 중소기업인들에게도 엄청난 피해를 주고 있다는 내용이다. 호텔 객실(총 306호실) 지분 55%를 가진 지인은 45% 지분의 구분소유자들과 위탁운영계약을 체결하고 1년 차에는 위탁수수료(연 8%)를 주기로 했고, 약정대로 수수료를 8개월 동안 꼬박 지급하던 중 지난해 2월 코로나사태를 맞았다는 것이다. 매출액이 마이너스 상태로 떨어진 상태에서 도저히 수수료를 지급할 수 없어, 체결한 계약서상 천재지변, 불가항력 등의 사유가 있으면 수수료를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는 약정을 근거로 “코로나19로 인해 사정이 어려워 4개월 치를 사실상 지급하지 못하겠다”고 하자 상대방 구분소유자들이 1년 차 위탁수수료(8%) 미지급분 4개월분 등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했다는 것이다.

그 행위는 민사소송법에 나오는 그들의 권리이니 상대방을 탓할 게 아니지만, 법원의 가압류 결정에서 담보금 등은 문제가 있다. 채권자가 가압류로 채권을 확보하기 위해 공탁할 때 청구금액의 40%에 달하는 금원에 대해 공탁보증보험증권 또는 현금을 내면 가압류가 인용돼 제3채무자가 채무자에게 금원을 지급하지 못하도록 제한한다. 여기에서 코로나19 등 불가항력적인 요소를 감안하지 않고, 본안소송의 개략적 검토가 없으니 채권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채무자가 가압류된 것에 대해 집행 정지 또는 집행 가압류를 취소시키기 위한 해방공탁을 할 때 채권자의 청구금액 전액을 현금으로 공탁해야 된다는 것인바, 채권자와 채무자 간 형평성에 비춰볼 때 너무나 문제가 따른다. 일반적인 채권자, 채무자 관계라면 몰라도 위탁운영계약에 따른 계약서상 문제는 본안소송에서 다툴 문제이고, 채권자, 채무자 누가 승소할지도 모르는데도 법원에서 일반적 룰을 적용해 채권자에게는 청구금액의 40%만 공탁보증보험증권 또는 현금을 내면 되고, 채무자는 청구금액 전액을 현금으로 내야 한다니 이 문제는 개선돼야 한다.

그와 같은 불공평을 안고 있는 채권 가압류로 인해 채무자가 이용하는 카드사를 제3채무자로 해 호텔의 매출액을 묶어놓으면, 결국 현행제도의 잘못(형평성 문제)으로 채무자 아닌(?) 채무자만 힘들 뿐이다. 뜻하지 않게 불가항력인 코로나19 시기를 만나 온 국민의 불편이 가중되는 상태에서 코로나 사태 이전만 해도 몰려들던 유커(중국인 관광객)가 찾아오지 아니한 상태에서 경영 악화로 호텔 지분의 55%를 소유한 경영자가 힘든 상황인데도 1실을 가진 구분소유자들은 위탁운영계약서 상의 연 8%를 꼬박 챙기겠다며 호텔경영에 찬물을 끼얹고 있으니 그 자체가 문제지만 법원의 채권 가압류의 형식적 검토나 인용결정도 문제가 적지 아니하다.

세상사에서 소송이 없으면 그보다 좋을 게 없겠지만 요즘같이 코로나 사태가 장기간 이어지다 보니 계약이 제대로 지켜지지 아니하거나 채무나 물품대금이 제때 정리되지 못해 소송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그로 인한 민사소송에 있을 때 법원에서 가압류, 가처분 등을 인용함에 있어서는 코로나19와 같은 불가항력 등 특수상황에 관한 현실적인 문제 인식이 재고돼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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