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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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뉴스를 보니 미국에서 올해 최고의 웰메이드 실화 드라마인 영화 ‘워스(Worth)’가 지난달 21일 개봉돼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식이다. 국내에서도 상영 중인 이 영화는 20년 전 미국에서 발생한 9.11테러에 대한 피해자들의 보상과 관련된 실화이다. 이 영화가 주목받는 것은 2016년 최고의 영화로써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 각본상을 동시에 거머쥔 바 있는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제작진과 출연 배우들이 다시한번 호흡을 맞추면서 세계인들이 마음 아파했던 실제 사건과 인물을 담아내는 데 올인 했기 때문이다.

‘스포트라이트’ 영화도 그랬다. 종교계 내부 일이라 기사화되는 자체가 터부시됐지만 용기 있는 기자들의 정의심이 발동돼 카톨릭 교회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들이 속속 드러났던 것이다. 미국 보스턴 지역의 신부들의 소아 성추행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고, 그 사실을 이 지역 언론 ‘보스턴 글로벌지’의 언론인들에 의해 그대로 파헤쳐졌으며, 그 실화들이 영화화된 ‘스포트라이트’가 상영되면서 미국사회에서는 언론인들의 정의로움에 찬사를 보냈던 것이다.

아마 ‘보스턴 글로벌지’의 기자들이 사건을 추적하는 용기와 집념이 없었더라면 신부들의 악행이 영원히 감춰졌을 테고, 어린아이들을 향한 마수(魔手)는 더 이어졌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언론의 진정한 기능과 언론인의 참다운 역할을 다룬 이 영화는, 비록 영화라는 방도를 쓰고 있지만 실제 발생한 사건의 사회고발이었으니 당시 미국사회 뿐만 아니라 이 영화를 관람한 세계인들의 반향은 매우 컸다고 하겠다.

‘스포트라이트’를 비롯해 ‘더 포스트(2018 개봉작)’와 ‘충격과 공포(2018 개봉작)’ 등 3편의 영화는 진정한 언론과 용기있는 언론인의 기능을 일깨운 영화로 미국사회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잠시 그 생각 끝에 “우리나라엔 왜 용감한 언론인을 다룬 영화가 없을까” 의문을 품었다가 이내 생각을 접고 말았다. 그 이유는 전형적인 민주주의국가로 자유언론의 가치가 철저히 지켜지고 있는 미국과 한국언론을 비교한다는 자체가 우습고 또 무의미하기 때문인 것이다.

자유언론을 위해 희생할 언론인들이 과연 존재할까 하는 회의가 먼저 와 닿는다. 지금도 우리사회에서는 갖가지 종류의 언론사가 많고 이에 종사하는 관계자들도 많지만 언론의 가치대로 행동하는 참언론인들이 대체 몇이나 될까, 그들이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실제처럼, 신성시하는 종교계 일부 목회자들의 개인적 또는 소수 집단적 일탈들을 집요하게 파헤칠 만큼 용기와 정의감이 있는지 가늠조차 힘드니, 더 이상 담론삼기는 어려울 일이다. 그렇다 해도 언론의 역할과 언론인의 사회적 기능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니 그 점까지 부정할 바는 아니다.

독자들의 이익과 정보 제공을 위한 활발한 언론 활동이 전개되면서 권력 심장부까지 깊숙이 파고들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미국과는 달리, 국내에서는 권력자들이 언론에 대해 족쇄를 채우고 재갈을 물리는 일이 한창 진행 중이다. 이 일로 인해 여야와 언론단체들이 시끄러운데 내용인즉, 더불어민주당이 언론개혁한답시고 허위·조작보도 등 이른바 ‘가짜뉴스’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의무를 부과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소위에서 강행 처리한 데 이어 8월까지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언론재갈법’이라고 강력 반발하고 있고, 한국기자협회, 한국여기자협회 등 5개 언론단체에서는 “민주당은 반헌법적인 언론중재법 개정을 멈춰라”라고 요구하고 나서고 있다.

본디 언론의 기능과 역할은 사회현상 등에 관해 실체적 진실을 독자들에게 알리는 직필정론을 원론으로 한다. 그런 가운데 국민들은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에 이어 민주주의의 제4부(府)로 알고 있고, 권력을 끊임없이 비판․감시하는 게 언론의 역할이라 믿고 있다. 그런 까닭에서 미국헌법을 기초한 3대 대통령인 토마스 재퍼슨이 말한 ‘신문 없는 정부보다 차라리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는 명언이 오랜 세월 동안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치를 발휘하고 있는 게 아닐까.

언론중재법이 민주당 주도하에 상임위 소위에서 통과되자 민주당 원내대표는 자축하듯 “가짜뉴스로 인한 국민의 피해를 구제하고 공정한 언론 생태계 조성을 위한 언론 개혁이 비로소 첫걸음을 뗀 것”이라며 자축했다. 그렇지만 자축할 만한 일은 아니다. 여당이 가짜뉴스 방지를 내세웠지만 이 법은 사회정의와 권력을 감시하는 참언론에 대한 재갈물리기로 전락될 여지도 없지 않다. 현행법에서도 얼마든지 잘못된 보도와 기사에 대한 제제가 가능한 일일진대, 권력에 대해 비판적 기사 자체를 원천봉쇄하는 데 이용될 수 있는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도입이 꼭 필요할 것인지 국민들도 의아해한다. 근본적으로 헌법상 부여된 언론의 기능성을 침해할 우려가 높은 언론중재법은 누구를 위한 법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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